2009년 11월 27일
1864년. 신장 위구르 무슬림 봉기 <7> - 야쿱 벡 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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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신장 위구르 무슬림 봉기 <2> - 청의 신장 지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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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신장 위구르 무슬림 봉기 <3> - 코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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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신장 위구르 무슬림 봉기 <4> -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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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신장 위구르 무슬림 봉기 <5> - 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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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신장 위구르 무슬림 봉기 <6> -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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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공이 스승 공자에게 물었다.
공자가 말했다.
"무기와 식량을 풍족히 하고 백성들이 믿도록 해야 한다"
자공이 다시 물었다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무엇을 버려야 합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무기를 버려라"
다시 물었다
"남은 둘 중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은 무엇을 버려야 합니까?"
공자는 말했다
"식량을 버려라. 믿음을 잃으면 정치는 설 수 없다"]
-논어, 안연편-
쿠차에서 첫 봉기가 일어난 지 약 1년이 지나간 뒤, 신장 지역의 상황은 대충 다음과 같았습니다.
일단은 쿠차를 중심으로 한 라시딘 호자의 세력-쿠차 외에도 우쉬 투르판, 카랴사르, 양기히사르 등
카쉬가르에서 서로 얽혀 싸우고 있던 청나라 잔병들과 무슬림 봉기군, 그리고 시딕 벡이 이끄는 키르기즈인들
호탄과 신장 동부의 우루무치, 투르판 등 남아있던 기존 봉기 세력
이처럼 신장의 무슬림들은 서로 사분오열되어 있었고, 만약 이 틈을 타 청군이 진격해 온다면 그대로 털리게 될 상황이었지만, 청은 이제 막 태평천국의 난을 진압한 상태라 뭐 이 먼 신장 땅까지 손을 쓸 여력이 없던 상황이었죠. 이 와중에 카쉬가르에서 지리하게 싸우고 있던 시딕 벡이 외부 세력에 눈을 돌립니다. 바로 17세기 청이 신장을 정복한 이래로, 그리고 건국 이래로 계속 신장을 노려온 이웃의 코칸드 칸국이었죠.
그러나 당시 코칸드 칸국의 상황도 막장이었습니다. 1842년 부하라 칸국이 코칸드 칸국을 침공하여 칸을 사로잡아 처형하였는데 이를 구원한 세력이 바로 키르기즈인들과 킵차크인들이었습니다. 결국 이들은 코칸드 칸국의 정치에 대대적으로 개입하기에 이르죠. 1852년부터는 러시아군도 코칸드로 남하하기 시작합니다. 오늘의 주인공인 야쿱 벡도 코칸드 칸국의 한 성을 수비하다 러시아군에게 대판 깨지고 수도인 타쉬켄트로 소환되기도 하였죠.
이런 상황에서, 명목상의 코칸드의 칸에 자리에 오른 후다야르 칸은 정주민(sart)를 이용해 킵차크인과 키르기즈인 등 유목민을 대거 학살해버리고(1852~53) 칸의 힘을 되찾습니다. 그러나 이미 코칸드의 힘은 기운지라, 1858년 다시 유목민들이 힘을 모아 후다야르 칸을 쫓아내버리고, 그러면 후다야르 칸은 부하라 칸국의 힘을 빌려 다시 코칸드를 치고.....러시아가 중앙아시아를 노리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멍청한 짓거리가 한동안 반복되었죠. 그러나 결국 1864년 경 유목민의 우두머리인 알림 쿨리(Alim Quli)가 코칸드의 패권을 거머쥐게 됩니다.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카쉬가르의 키르기즈인들이 알림 쿨리에게 백산당계 호자-이미 다 잊으셨으니 다시 한번 설명드리자면, 차가타이 가문의 후손이 다스리던 이곳 신장 지역은 16세기 이후 칸의 권위는 사실상 유명무실화되고 이슬람 신비주의 종파의 우두머리(호자라 불리는)가 엄청난 권위를 행사합니다. 그런데 이 종파가 흑산당/백산당 둘로 나누어 다투다가 결국 몽골에 의해 정복되게 되죠. 이때 마지막까지 권위를 행사한 종파가 백산당 종파입니다. 신장이 정복된 후 그곳을 지배하던 백산당계 호자들은 다 이웃의 코칸드 칸국으로 망명하였고, 이들이 주축이 되어 자주 신장을 침공하였죠-를 하나 보내달라고 요청합니다. 즉 자신에게 부족한 종교적 권위를 이용해서 카쉬가르의 패권을 잡겠다는 것이지요.
이에 알림 쿨리는 부주르그 호자(Bujurg Khwaja)라는 비교적 만만한 인물과, 기존에는 별로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던 야쿱 벡(Yaqub Beg)을 보냅니다. 18세기나 19세기나 신장과의 무역은 코칸드에 있어 중요한 일이었고, 항상 신장을 통제하려고 했던 것이 코칸드의 야망이었던 만큼, 이렇게 굴러들어온 기회를 놓칠 수야 없었겠죠.
그래서 1865년 1월, 부주르그 호자와 야쿱 벡은 카쉬가르에 도착합니다. 그런데 이게 왠 일, 키르기즈인들이 한 1년 가까이 포위하고 있으니 결국에 카쉬가르의 무슬림 반란군이 키르기즈인에게 항복해버린겁니다.(청군은 더 오래 버텼습니다) 부주르그 호자와 야쿱 벡이 더 이상 필요가 없어진거죠. 오히려 키르기즈인에게 불만이 많았던 카쉬가르인들은 부주르그 호자와 야쿱 벡의 편을 들어 키르기즈에 대한 반역을 꾀합니다.

키르기즈의 지도자 시딕 벡은 펄펄 뛰며 병사를 긁어모아 공격에 나섰으나, 4천명에 달하는 야쿱 벡의 군대에 의해 패하고 서부의 텐산 산맥으로 도망가 버렸죠(후에 시딕 벡은 야쿱 벡에게 포섭, 그를 위해 싸우게 됩니다) 이렇게 야쿱 벡의 모험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쿠차 정권에 대항해 양기히사르 등 신장의 도시들을 정복하기 시작하죠. 이 와중에 라시딘 호자의 조카이자 쿠차 정권의 서부 원정군을 이끌었던 부르한 웃 딘이 생포됐다 겨우 풀려나기도 하죠.
쿠차 정권으로는 하늘이 무너지는 소식이었습니다. 자기네들은 그동안 카쉬가르, 야르칸드 등 신장 서부 지역의 주요 도시들을 정복하려고 기를 쓰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디서 굴러들어온 찻집 종업원이(야쿱 벡은 어린 시절 찻집에서 종업원으로 일했다는 소문이 있었습니다)나대고 있다니... 라시딘 호자는 군사를 박박 긁어모아 2만 6천명의 대병을 이끌고 작년에 공격하다 실패한 야르칸드를
공격, 정복하는데 성공합니다. 그 뒤 더 군대를 박박 긁어모아 7만명에 가까운 대군을 이끌고 야쿱 벡의 군대를 박살내기 위해 그가 있는 카쉬가르로 진군했죠.
이에 비해 야쿱 벡에게는 키르기즈, 킵차크 인을 포함한 병력이 2,000명도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양군은 카쉬가르 인근의 한 아릭 이라는 곳에서 맞붙었는데(전투 일시는 약 6~8월 사이로 추정됩니다), 훈련되지 않은 농민들을 긁어모은 쿠차의 군대는 유목민과 코칸드의 정규군 출신인 야쿱 벡의 군대에게 힘 한번 제대로 쓰지 못하고 궤멸당하고 맙니다. 1864년 봉기가 일어난지 2년 가까이 그렇게 돈과 인력을 모아놨는데 두 시간 만에 모조리 먼지가 되버린 거죠.
이런 대승에 힘입어 결국 지긋지긋이 버티던 카쉬가르의 청군도 9월에 항복해버리고 기반을 다진 야쿱 벡은 본격적인 신장 정복에 나섭니다. 그러나 이런 그에게 문제가 하나 있었는데, 본국 코칸드가 러시아에게 완전히 털려버렸다는 사실이죠. 그를 파견한 알림 쿨리는 러시아군과의 전투에서 전사해버렸으니, 더 이상 코칸드 측의 추가 지원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한편 자신들의 수장을 잃은 킵차크와 키르기즈 인들은 자기들이 쫓아낸 후다야르 칸이 부하라에서 다시 힘을 길러 쳐들어 온다는 소식을 듣자 야쿱 벡에게로 망명해버립니다. 이 숫자가 약 7,000명에 달했다는데 병력이 부족했던 야쿱 벡에게는 큰 힘이 되었지요. 코칸드 칸국도 반병신이 되었겠다, 자신에게도 힘이 생겼겠다, 자신감이 생긴 그는 코칸드 칸국과 연을 끊기로 작정하고 명목상의 지도자이자 코칸드의 종인 부주르그 호자를 메카로 순례나 하라고 보내버립니다. 1866년 그는 신장의 자신만의 왕국의 새로운 지도자가 되죠.
야쿱 벡 국가의 확장은 가속화됩니다. 1866년 5월 야르칸드를 최종 정복하고, 이 기세를 모아 강력한 군대(기병의 수가 1만에 달했다고 합니다)와 화기를 보유하고 있던 호탄의 지도자 하비브 울라를 연회에 초대한답시고 몰래 불러와 사로잡아 1867년 1월 호탄까지 정복하기에 이릅니다. 물론 당연히 존재가치가 없어진 하비브 울라는 사라졌지요. 당연히 호탄 주민의 야쿱 벡에 대한 감정은 최악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일이 되려고 하는지 쿠차 정권은 내분으로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라시딘 호자니, 부르한 웃 딘이니 백산당이니 흑산당이니 하는것도 다 이슬람교 신비주의 종파들이자 그 일원들이었지만, 당시 우쉬 투르판에서는 더 이단적인 성향을 띈 쿠브라위야, 이스하키야, 나으마티야 등 신비주의 종파들이 있었고, 여기에 호자들의 통치에 반발을 품은 청나라 시대부터 이어진 무슬림 지배계층도 합류해 반란을 일으키기도 하였습니다. 물론 떼죽음을 당해 7개 우물이 사람 시체로 가득 찼다고 할 정도였습니다만...
한술 더 떠서 호자들끼리도 사이가 안좋았죠. 형제들, 사촌들끼리 군사 문제로 갈등을 빚고 감금하는 상황까지 이어졌습니다. 이런 상황이니 쿠차 내에서도 야쿱 벡 편을 들고 몰래 내통하는 사람들이 생겨났죠. 1867년 여름 야쿱 벡이 쿠차 정권에 대한 원정을 개시하자, 라시딘 호자의 조카인 부르한 웃 딘(위에 나온 사람하고 같습니다..)과 그의 아들 함 웃 딘은 야쿱 벡에게 군대와 우쉬 투르판, 쿠차를 들어다 바쳤지요.
쿠차? 네. 그렇습니다. 1864년 반란의 중심지이자 라시딘 호자의 호자 정권이 있던 그 곳은 제대로 된 전투도 없이 함락당했고, 중간의 산발적인 교전 도중에 라시딘 호자는 쥐도 새도 모르게 죽어버렸습니다. 당연하게도, 그에게 저항했던 호자들은 모조리 죽어나갔지요.
1867년 쿠차가 무너지고 신장에 남은 세력은 이제 동쪽에 박혀있던 우루무치의 반란 세력이었습니다. 야쿱 벡에게는 이들의 존재가 불안 그 자체였습니다. 서쪽에서는 권좌를 되찾은 후다야르 칸이 야쿱 벡의 국가를 의심에 찬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고, 코칸드를 유린한 러시아군은 북쪽에 주둔하며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무슬림에 반대하는 한인 무장집단(團練)은 동부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었고, 청의 지배가 무너지자 동부 몽골족-호쇼트(Khoshot), 토구르트(Toghurt)-도 날뛰고 있었죠. 우루무치의 한인 무슬림 반란세력(퉁간)들은 이들을 언제든지 규합, 야쿱 벡 정권을 노릴 수 있는 세력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1870년 이런 공격이 시작되죠.
야쿱 벡은 이들 퉁간들과 한동안 고전합니다만, 결국 1870년 투르판과 우루무치 모두 점령하는데 성공합니다. 또한 한인 단련을 포섭하고, 토르구트 부족을 정벌함으로써 동부 변경도 안정시켰습니다.....
.....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1871년 6월 작년에 포섭해놨던 단련의 우두머리인 서학공(徐學功)이 우루무치를 공격하고 야쿱 벡이 임명해놓은 통치자를 살해해버렸죠. 또한 이들 한인 단련은 야쿱 벡 이전 퉁간(한인 무슬림) 봉기의 우두머리이자 우루무치의 지배자였던 타명(妥明)과 연합하여 동부에서 야쿱 벡에 반기를 들었죠. 무슬림에 반대하는 단련과 무슬림인 타명의 세력이 연합한 것은 바로 이들 모두가 한인이라는 공통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코칸드 출신의 투르크인인 야쿱 벡과 그의 정권이 당연히 마음에 들 수 없었던 거죠. 1864년의 봉기가 종교적 요인이 그 도화선이 된 반란이기는 했지만, 이러한 문제도 존재했습니다.
단련 4천명에 퉁간 16,000명에 달하는 대규모 반란군은 그러나 1872년 패배했고, 타명은 자결했습니다. 야쿱 벡은 퉁간 출신을 이 지역의 통치자로 임명하면서 그들을 다스리게 했죠. 이렇게 야쿱 벡은 신장에 들어온지 7년만에 신장 전역을 점령하게 되었습니다. 이전 글에도 썼듯이, 병력이라고는 몽둥이 든 농민이 대다수였던 쿠차 정권의 군대 등에 비해 유목민과 코칸드 출신의 정규군과 장교에 화기까지 포함된 야쿱 벡의 병력은 굉장히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죠. 유일하게 전면적으로 붙어볼 만한 준비를 갖춘 호탄의 하비브 울라의 군대를 속임수로 끝내버렸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 합니다.
그러나 쿠차 정권이 그렇게 쉽게 무너진 이유는, 다름 아닌 민심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었지요. 당시 상황을 현지에서 보고 전하는 위구르의 역사가 사이라미는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쿠차 정권은 쿠차 주민들의 지지를 받고 탄생했지만, 결국 이러한 평가를 받고 힘없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어떤 정권이든간에, 그것이 처음 만들어질때의 인기가 아닌, 얼마나 백성들과 국민들의 믿음을 사느냐가 중요하다는 사실은 우리가 관심도 기울이지 않던 초원의 역사에서도 그대로 되풀이되고 있었습니다.
참고문헌 : 근대 중앙아시아의 혁명과 좌절. 김호동 지음, 사계절, 1999
PS : 그동안 참 많은 방황이 있었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과연 저 자신에게나 여러분에게나 도움이 되는 것인가... 고민이 많았네요. 아무래도 빨리 이 모음을 끝내고, 제 자신에게 만족을 줄 수 있는 그런 글을 위해 노력해야겠습니다. 이 글은 이번 일요일까지 모두 끝낼 계획입니다.
# by | 2009/11/27 21:55 | Al-Tarikh[역사] | 트랙백 | 덧글(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