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명록

한동안 방치된 "대체로 무해함"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본 블로그는 무작위적으로, 긴 간격을 두고 갱신됩니다.

체스판의 말, 종파갈등 - The Sunni-Shia Conflict: Understanding Sectarian Violence in the Middle East 독서

The Sunni-Shia Conflict: Understanding Sectarian Violence in the Middle East
Nathan Gonzalez, Mission Viejo: Nortia Press, 2009.

오늘 소개해드릴 책은 종파주의나 종파갈등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서나 심도 있는 이론을 수립하는 이론서는 아닙니다. 그보다는 (미국의) 일반 독자들 및 정책 결정자들 등 중동/아랍 세계의 비전공자를 위주에 두고 쓰여진 책이지요. 그렇지만 순니-쉬아 종파의 역사나 관계에 대한 기술적인 묘사가 아닌, 꽤나 흥미로운 분석을 제공하는 책입니다.


https://www.amazon.com/Sunni-Shia-Conflict-Understanding-Sectarian-Violence/dp/098422520X


1. 종파갈등의 세 가지 촉매

기본적으로 이 책을 관통하고 있는 질문은 "중동의 종파갈등을 촉발하는 요인은 무엇인가?" 입니다. 그리고 이에 대해 저자는 세 개의 촉매, 즉 카리스마적 지도자 중심의 정치적 환경, 국가 권력의 붕괴, 그리고 셋 중 가장 중요한 요인인 중동 지역 내의 지정학적 갈등이 바로 그 요인이라고 제시합니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오늘날의 중동에서는 이 세 촉매 모두를 쉽게 확인할 수 있지요.

무슬림 공동체 초기 알리와 그 후계자들을 따르는 집단 - 쉬아파 - 와 다양한 종교지도자, 성자, 운동가를 중심으로 형성된 여러 종파들, 그리고 오늘날 이라크 쉬아 정치세력의 지도자들인 무크타다 앗 사드르와 하킴 가문, 레바논 내전 시기의 수많은 민병대 대장들과 헤즈볼라의 하산 나스랄라, 예멘의 알리 압둘라 살레흐 파벌과 부족장을 중심으로 한 후티 부족들, 그리고 만약 넣어본다면 IS의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 등등 과거와 현재를 막론하고 중동 역사에서는 많은 지도자 개인 중심의 정치와 파벌 정치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정부의 통제 능력이 붕괴한 사례도 많습니다. 시리아, 이라크, 레바논, 예멘 등등 중동은 어떤 지역보다 국가 권력이 미약하고 중앙정부의 통제력이 사회 깊숙히 미치지 못하는 국가들이 많지요. 마지막으로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갈등으로 대표되는 지정학적 갈등 역시 현재진행형입니다.

이러한 세 가지 촉매는 서로 어떻게 결합하고 작용해서 종파갈등으로 발전할까요? 지도자와 그들을 따르는 파벌 한정된 자원 - 돈, 지위, 권력 등등 - 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경쟁하고 갈등합니다. 만약 국가권력이 건실하다면 국가는 이들의 행동과 갈등을 통제하고, 이에 따라 지도자들과 파벌 사이의 갈등은 제도적 영역 내에서 전개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종의 이유로 국가권력이 붕괴하거나 취약해질 경우 각 파벌, 지도자를 견제하고 억제할 수단은 사라지게 되죠. 이런 상황 하에서 각 파벌과 지도자들은 상대를 제압하고 이권을 차지하기 위해 무력을 포함한 모든 수단을 강구하게 되며 또한 파벌 내부의 결속을 강화하고 지지자들을 동원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합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종파-종족 소속과 같은 귀속적 정체성이 동원됩니다. 국가 붕괴로 인한 무정부적 혼란 상황에서 개인은 스스로의 안전을 위해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동족집단에 자연스럽게 의존하게 되고, 파벌의 지도자들은 이 점을 이용해서 불안한 개인들을 끌어모읍니다.

지역적 수준에서 벌어지는 지정학적 갈등은 이러한 갈등을 더욱 확대합니다. 지역에 대한 패권을 확대하려는 지역 내 강대국들에게 파벌 사이의 갈등이 벌어지고 있는 이러한 실패국가들은 세력확대를 위한 최적의 교두보입니다. 특정 파벌과 지도자를 팍팍 밀어줘서 정권을 장악하게 하면 그 국가를 자신의 영향력 하로 끌어올 수 있으니까요. 종파와 종족과 같은 근원적 정체성은 타국의 특정 파벌, 지도자에 대한 지원과 후원을 정당화하는 과정에서도 유용하게 쓰일 수 있습니다. "박해받는 형제, 고통받는 동포의 고난을 무시할 수 없다"라는 인도주의적 명분을 내걸 수 있으니까요.

곤잘레즈는 현재 전개되고 있는 중동의 종파갈등이 세 촉매 사이의 이러한 상호작용의 결과라고 봅니다. 그런 관점에서 그는 종파갈등은 한 국가, 사회 수준의 갈등이 아닌 지역 전체적으로 이루어지는 지정학적 갈등의 한 부분이자 결과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이라크는 중동의 유구한 역사동안 이러한 지역 차원의 지정학적 갈등이 벌어지는 전장이었습니다. 바로 지리 때문이지요.

2. 이라크라는 체스판

곤잘레즈에 따르면 이슬람 이전이든 이후든 중동의 역사를 관통하는 하나의 테마는 서부 지역 - 아나톨리아 반도 또는 나일 계곡 지역 - 과 동부 지역 - 이란 고원 - 사이의 경쟁과 갈등입니다. 그리고 지리적 요인으로 인해 이라크는 이 거대한 게임의 주요 전장이 되어 왔지요.


북부와 동부의 산맥, 서부와 남부의 광활한 사막


이란 고원 지역은 카스피해 연안의 엘부르즈 산맥, 그리고 터키 남동부에서 시작해서 이라크 북부의 쿠르디스탄을 지나 이란 서부와 남부를 거쳐 호르무즈 해협까지 이어지는 자그로스 산맥, 동부의 힌두쿠쉬 산맥으로 둘러싸여 외부의 침입이 어려운 지리적 환경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런 지리적 환경 덕분에 이란 고원에 자리잡은 이란어 문화는 알렉산드로스, 무슬림, 투르크와 몽골의 침입에도 불구하고 독자적 특성을 유지하면서 오늘날까지 지속되어 올 수 있었지요. 아나톨리아 반도 역시 카프카스 산맥과 자그로스 산맥이라는 자연적 장벽을 지니고 있지요. 하지만 사방이 산맥으로 둘러싸인 이란에 비하면 비교적 취약합니다. 그러나 가장 취약한 지역은 바로 메소포타미아입니다. 위 지도에서 보이듯이, 이라크 -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서부, 남부로는 어떠한 자연적 방어선도 없습니다. 메소포타미아에 자리를 잡은 세력이 이란 고원으로 진출해나갈 경우 이란의 산악지역에 부딪히는 반면, 이란 고원의 문명이 메소포타미아로 진출한다면 지리적 방해물 없이 쉽게 나아갈 수 있는 환경입니다. 남부나 서부의 침입에 무방비인건 말할 것도 없지요. 이라크(그리고 시리아) 지역은 7세기 아라비아 반도의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되었고, 18세기 와하브 추종자들은 남부 이라크를 쉽게 약탈할 수 있었죠.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이런 지리적 환경으로 인해, 길고 긴 중동 지역의 역사에서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고대 수메르 및 바빌로니아,그리고 압바스 시대와 같은 일부 시대를 제외하면 이란 고원의 문명과 서부 지역의 문명 사이의 전장으로서의 역사, 또는 둘 중 하나에 종속된 역사를 지녀왔다는 것이 곤잘레즈의 해석입니다. 특히 이란 고원 문명은 아케메네스 페르시아의 키루스의 바빌론 점령 이후 지속적으로 이라크 지역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했습니다. 파르티아와 사산 조 페르시아는 모두 이란 고원에서 발원하여 메소포타미아를 점령, 이 지역에 근거지를 두면서 로마와 대결했고 로마는 때때로 이라크까지 치고 들어갔지요. 후대의 사파비 페르시아 역시 이라크를 두고 오스만 제국과 오랜 전쟁을 벌였습니다. 저자는 파티마조와 셀주크조 대립 시기, 그리고 일칸국과 맘루크 술탄국의 대립 역시 이란 고원의 문명과 서부 문명(아나톨리아 또는 나일 계곡에 근거지를 둔) 사이의 갈등의 일환으로 파악합니다. (물론 모든 대립에서 이라크가 전장이 되었던 것은 아니지만요. 가령 일칸국과 맘루크 사이의 전쟁은 주로 오늘날의 시리아 지역에서 전개되었습니다.)

콜버트 헬드(Colbert Held)와 토마스 커밍스(Thomas Cummings)가 제시한 중동 역사의 지리적 양상은 곤잘레즈의 분석을 뒷받침합니다. 이들에 따르면 아나톨리아, 이란 고원, 메소포타미아 그리고 나일 계곡 네 곳의 지역이 중동 역사에서 중심의 위치를 차지해왔으며, 특히 아나톨리아와 이란 고원이 가장 지속적이고 강력한 중심지였습니다. 이 두 지역은 중동 역사에 걸쳐 서로 경쟁해왔으며 상호 견제를 위해 메소포타미아로의 진출을 추구해왔지요. 반면에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독립적으로 강력한 중심이 아닌, 오직 이란 고원과 연결되어 있었을 때에야 중동 전체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습니다(Held and Cummings 2014, 78-79).

특정 지리적 중심지 사이의 갈등과 주변부의 전장화라는 역사적 양상은 지금까지도 이어집니다. 오늘날에는 순니 아랍 세계 - 요르단,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등 - 이 "서부" 진영을 구성하고 다시 이란이 "동부" 진영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현재 이라크의 혼란은 이라크(그리고 시리아까지)가 또 다시 유구한 동-서 사이의 지정학적 갈등의 전장이 되었음을 보여준다는 것이 곤잘레즈의 주장입니다.

중동 역사에서 전개된 동-서 지정학적 갈등 구도에서 종교는 우리 편을 끌어모으고 상대와의 경계선을 긋는 유용한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비잔틴과 사산조 페르시아 갈등 구도에서는 기독교와 조로아스터교(그리고 유대교)가 주요 구분 도구였고, 파티마-셀주크 갈등 구도에서는 오늘날과 반대로 쉬아파가 서부에, 순니파가 동부에 근거지를 두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스만-사파비 시대 들어야 서부의 순니-동부의 쉬아 구도가 명확해집니다. 특히 이란 지역의 종교, 종파의 변동을 언급하며 곤잘레즈는 지역과 그 지역에 근거를 두고 있는 세력 사이의 갈등이 먼저이지, 종교와 종파는 이 과정에서 강조되고 동원되는 부차적인 요소임을 강조합니다.

위에서 말씀드렸듯이 이 책은 전문가들을 위한 학술서나 중동과 종파관계, 지정학적 갈등의 역사를 세밀하게 고찰하는 전문 역사서가 아닙니다. 따라서 저자는 왜 중동에서 카리스마적 지도자 중심의 정치가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지, 국가권력은 왜 붕괴하는지의 질문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습니다. 또한 국가권력의 붕괴가 종파갈등의 촉매라는 주장에 대해서 역시 그 반대의 가능성, 즉 멀쩡히 돌아가던 국가가 종파갈등에 의해서 붕괴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는 논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왜 하필 21세기에 들어서 종파란 요소가 지정학적 갈등의 도구로 떠오른 것일까요? 20세기 중반, 나세르와 아라비아의 왕들이 대립하던 시기의 전선은 이데올로기를 따라 그어졌습니다. 지정학적 갈등의 도구는 어떻게 이데올로기나 민족에서 종파로 바뀌게 되었을까요? 종파 정체성은 정말 그렇게 쉽게 동원될 수 있는 도구일까요? 그러면 만약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를 포함한 중동의 국가들이 더 이상 종파 정체성을 이용하지 않기로 한다면 종파 갈등은 사라질까요? 설령 현재의 종파갈등의 구도가 인위적으로 구성된 것이라도, 오늘날 중동의 여론을 보면 종파갈등과 폭력의 기억, 그리고 그로 인한 상호불신과 증오는 어느 때보다 뿌리깊게 자리잡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종파갈등은 설령 정치적 환경이 바뀌더라도 홀로 생존력을 가지고 스스로 번식하며 유지될 가능성 역시 있지 않을까요?


정체성, 갈등과 폭력의 기억과 이로 인한 불신과 증오
종파 정체성은 정말 쉽게 움직이고 조작할 수 있는 체스판에 말일까?


하지만 일반 독자들을 위한 개론서로서 이 모든 복잡한 질문과 변동을 다 다뤄야 할 필요는 없겠지요. 한 사람의 저자, 하나의 책이 층위의 질문을 만족스럽게 답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책은 종파갈등 이해를 위한 새로운 관점 - 즉 지리적 요인을 통한 해석 - 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지리라는 흥미로운 분석의 틀에 대해 생각해 볼 것을 독자에게 요청하는 것으로도 이 책은 어느 정도 그 본분을 다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Gonzalez, Nathan. The Sunni-Shia Conflict: Understanding Sectarian Violence in the Middle East. Mission Viejo: Nortia Press, 2009.

Held, Colbert C. and John Thomas Cummings. Middle East Patterns: Places, Peoples, and Politics, 6th edition, Boulder: Westview Press, 2014.

1 2 3 4 5 6 7 8 9 1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