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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 사막에 핀 꽃 또는 모래 위의 누각 독서

이스라엘 - 사막에 핀 꽃 또는 모래 위의 누각

1. 이스라엘은 중동에서 가장 발전된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석유 수출 덕에 GDP 등 지표 상의 수치가 뻥튀기된 걸프 국가들과는 달리 이스라엘은 특정 자원에 의존하지 않는 건실한 경제를 지닌 국가이자 더 나아가 창의적이고 혁신적이며 역동적인 저력을 지닌 국가로 여겨진다. 우리나라에 출판된 "이스라엘과 창조경제", "창조경제, 이스라엘에서 배운다", 이스라엘 비즈니스 산책: 세계가 주목한 스타트업의 요람", "창업국가: 21세기 이스라엘 경제성장의 비밀", "누구나 인재다 유대인과 이스라엘, 그들의 창조경제를 엿보다" 등과 같은 책들은 이스라엘을 "혁신의 첨단을 달리는 스타트업을 키우는 제도와 시스템을 갖춘 나라",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인재를 키우는 사회적 격려의 문화를 지닌 이상적 경제성장의 모델을 제시하는 나라"로 묘사하며 유대인들이 지닌 창의성 및 타고난 능력을 계발하는 교육과 전통을 강조한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미국 다음으로 스타트업 및 벤처기업 활동과 투자가 활발한 나라이다.

경제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은 학문, 과학, 사회적 개방 수준, 정치적 자유도 등 다양한 영역에서 중동의 다른 국가들에 비해 독보적인 선두 위치를 달리고 있다. 노벨상 수상이 한 국가의 과학과 학문 발달 수준을 가늠하는 유일한 지표는 아니지만, 이스라엘 한 개 국가의 노벨상 수상자와 아랍 세계 및 무슬림 세계의 수상자의 수를 대비해보면 이스라엘이 차지하고 있는 선도적 위치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스라엘은 두 명의 노벨경제학상, 네 명의 노벨화학상과 한 명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한 반면, 22개 아랍 국가를 통틀어 평화상을 제외한 노벨상 수상자는 한 명의 문학상(이집트, 나깁 마흐푸즈, 1988년)과 한 명의 화학상(이집트, 아흐마드 즈웨일, 1999년)에 그친다. 범위를 더 넓혀 세계 전체의 무슬림 수상자로 확대해봐도 문학상 두 명(나깁 마흐푸즈와 터키의 오르한 파묵, 2006년), 물리학상 한 명(파키스탄, 무함마드 압두스 살람, 1979년)과 화학상 두 명(아흐마드 즈웨일과 터키의 아지즈 산자르, 2015년) 총 다섯 명으로 이스라엘 한 개 국가에 비해 턱없이 뒤쳐진다. 네이처에 따르면 2011년 인구 8천만이 넘는 이란과 터키에서 발행된 논문의 수는 각각 19,753개와 17,598개였지만 인구 천만도 되지 않던 이스라엘에서는 약 1만 개의 논문이 발표되었다. 아랍 세계 중 가장 많은 인구를 자랑하는 이집트의 2011년 논문 수는 이스라엘의 절반인 5,592개에 불과했다. 이스라엘 공과대학교(테크니온 Technion) 산하 사무엘 네만 국가정책연구소(The Samuel Neaman Institute for National Policy Research)에서 2011년 발행된 보고서에 따르면 이스라엘과 중동 5개국(이란, 터키,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요르단)에서 발표된 논문들의 논문당 피인용수는 여전히 두 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과학의 영역에서 희미한 아랍 세계
출처: http://www.nature.com/news/365-days-2011-in-review-1.9684


2000-2010년 중동 5개국과 이스라엘의 공학 및 자연과학 분야 학술논문 발간 현황 변동
- 이란과 터키의 약진, 지지부지한 아랍 국가들
출처: Yair Even-Zohar, Daphne Getz, and Uri Kirsch, "A comparative study on the scientific and technological research in Israel and some middle eastern countries, using quantitative indicators," The Samuel Neaman Institute for National Policy Research, October 2011, 7.


2000-2010년 중동 5개국과 이스라엘의 공학 및 자연과학 분야 학술논문의 피인용수의 격차
- 미미하게 증가하고 있지만 여전히 이스라엘을 따라잡기는 쉽지 않다.

출처: Yair Even-Zohar, Daphne Getz, and Uri Kirsch, "A comparative study on the scientific and technological research in Israel and some middle eastern countries, using quantitative indicators," The Samuel Neaman Institute for National Policy Research, October 2011, 8.


또한 2003년 UN 아랍 인간개발보고서(Arab Human Development Report)에 따르면 1980년에서 1999년 및 2000년까지 미국에서 등록된 특허 중 이스라엘에서 출원된 특허는 총 7,652건에 달했지만 같은 기간 아랍 9개국(바레인, 이집트, 요르단, 쿠웨이트, 오만, 사우디아라비아, 시리아, UAE, 예멘)에서 출원된 특허는 총 370건에 불과했다.

물론 이러한 수치들을 지나치게 맹신해서는 안될 것이다. 논문의 피인용수, 특허출원 및 등록 수 그리고 국가별 논문수가 정말로 국가 간의 학문역량의 차이를 보여준다고는 단언할 수 없다. 그러나 인구 규모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학문 및 과학 영역에서 다른 중동 및 아랍 국가에 비해 이스라엘이 앞서가고 있다는 전반적인 추세는 부정하기 어렵다. 9세기 칼리프 알 마문의 시기부터 90년대 말까지 아랍 세계에서 아랍어로 번역된 책은 약 1만 권으로, 이는 90년대 말 스페인에서 1년에 번역되어 출판된 책의 숫자와 비슷하다. 22개 국가, 수억 인구가 사는 지역에서 약 천 년간 번역된 책의 수가 한 개 나라에서 1년에 번역되는 책과 비슷하다는 것은 아랍 세계가 처한 지적 위기를 여실히 보여준다.(물론 숫자는 쉽게 사람을 현혹하기도 한다. 유네스코의 아랍 인간개발보고서가 아랍인들의 평균 독서 시간이 평균 6분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를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아랍 인간개발보고서를 다 뒤져보아도 그런 통계는 없다.)

사회적, 정치적 영역에서도 이스라엘의 특수성은 두드러진다. 지구상 어느 곳보다 동성애에 대한 혐오와 폭력이 강력한 지역, 커밍아웃이 곧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는 지역에서 이스라엘은 동성애자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거의 유일한 나라이며, 이스라엘의 동성애자의 인권 수준은 중동 내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세계적으로 봐도 매우 높은 수준을 자랑한다. 2011년에는 미국과 유럽의 다른 어떤 도시보다 텔아비브가 "동성애자를 위한 세계 최고의 도시"로 선정되기도 했다. 아랍 세계, 그리고 이란의 여성들에 비해 이스라엘의 여성들이 훨씬 더 나은 지위와 권리를 누리고 있다는 점은 결코 부정할 수 없다. 또한 아랍의 봄 이전에도, 그리고 이후에도 이스라엘은 가장 정치적으로 자유로우며 다원적인 국가다. 2011년 이전(그리고 사실 이후에도) 이스라엘을 제외하고 중동 지역 내에서 투명하고 공정한 선거로 정권을 바꿀 수 있던 나라가 몇이나 있었던가? 정부 정책을 비난하는 기사를 쓰기 위해 기자가 목숨을 걸어야 하지 않는 나라가 몇이나 있었던가? 야당 지도자, 시민사회 운동가가 고문과 체포, 의문사의 공포에 시달리지 않을 수 있는 나라가 얼마나 되었던가?

아랍 국가인 요르단에 연수, 사업 등으로 오랫동안 머무르다가 이스라엘을 방문한 많은 사람들인 이스라엘을 '선진국', '중동의 유럽', 또는 '문명국'이라고 부르곤 한다. 이처럼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 사이의 격차는 복잡한 지표와 숫자와 거시적 영역에서만이 아닌 일상생활의 영역에서도 극명히 체감할 수 있다. 아랍 국가들에 비해 이스라엘 국가와 사회가 더욱 발전되어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2. 오늘 소개할 두 책, 슐로모 산드의 "유대인, 불쾌한 진실"(훗, 2017)과 다나미 아오에의 "이스라엘에는 누가 사는가"(현암사, 2014)는 이스라엘의 다른 면, 즉 배타적이고 차별적인 면과 그 모순을 조명하는 책들이다. 그 "다른 면"에 대해 "숨겨진 진실"이나 "은폐되었던 진실"이라고 부르고 싶지는 않다. 이스라엘의 발전되고 개방된 면모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 책들이 그려내는 이스라엘 사회의 모습은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와 사회가 지닌 여러 측면들(또는 사실들) 중의 하나라고 보는 것이 더욱 적합할 것이다.

3. 이스라엘은 건국 이래로 근대적 국가, 민주국가, 그리고 유대 민족국가를 지향해왔다. 그리고 여기에서 모순이 발생한다. 2010년 기준 이스라엘의 전체 인구는 약 760만 명으로 이 중 20%인 약 165만 명이 이스라엘 시민권을 가진 아랍인들이다. 인구 중 상당 규모를 차지하는 비유대인, 즉 아랍인들이 배제된 '유대 민족국가'로서의 이스라엘이 영토 내 모든 시민의 평등한 대우와 권리를 보장하는 민주국가로서의 이스라엘과 양립 가능할까? 유대 민족국가의 성격을 강화하는 변화는 필연적으로 이스라엘 아랍인들의 배제를 가져올 수 밖에 없고, 유대인과 아랍인의 완전한 평등과 권리를 보장하는 민주적 변화는 이스라엘의 유대 국가적 성격을 약화하게 된다. 이러한 딜레마 속에서 2011년 이래로 네탄야후 총리는 이스라엘 기본법에 "이스라엘은 유대인들의 민족적 조국이다."라는 구절을 추가함으로써 유대 민족국가 성격을 강화하고자 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예멘의 유대인들
출처: http://english.alarabiya.net/en/News/middle-east/2016/03/21/Israel-secretly-airlifts-remaining-Yemenite-Jews-.html



에티오피아의 유대인들
출처: http://america.aljazeera.com/articles/2015/8/29/ethiopias-secret-jews.html



중국의 유대인들
출처: http://jewishweek.timesofisrael.com/this-year-in-kaifeng/


유대교 외에 이들 다양한 유대인들을 하나로 묶어주고 유대인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대변하고자 하는 유대 민족은 무엇일까? 우리는 너무나 당연하게 '유대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만, '유대인이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그닥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물론 유대교 신도라면 유대인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유대교를 믿지 않는, 종교적 가르침과 교리와 거리를 두고 세속적 가치에 따라 사는 유대인도 존재할 수 있을까? 스스로부터 종교를 가지지 않고 세속적 가치를 중시하는 '유대인'인 슐로모 산드는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하는 모순을 파고든다.

'유대인'은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된다. 동유럽, 서유럽, 북아프리카 및 중동,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티오피아 등), 미국과 러시아, 심지어 중국 등에서도 유대인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살아가는 환경과 사회가 다양한만큼 이들의 언어, 문화, 관습, 가치체계와 사고관 역시 다양하다. 슐로모 산드는 질문한다: 유대교 신앙과 율법 외에 프랑스 파리에 사는 유대인과 이라크 바그다드에 사는 유대인들을 하나의 '민족집단'으로 묶을 수 있는 요소가 존재하는가?

신생 이스라엘 국가는 이렇게 다양한 배경을 지닌 구성원들을 하나로 묶어내기 위해 중동의 다른 어떤 신생국가보다 강력한 '국가/민족 만들기' 작업을 수행했다. 시온주의자들과 이스라엘의 건국의 아버지들은 게토에 내몰려 탄압받고 박해받던 과거의 나약한 유대인과는 구분되는, 강하고 당당한 새로운 이스라엘/유대인 정체성을 만들어내고자 했다. 그러나 이들 시온주의자들은 곧 문제에 부딪혔다. 시온주의 운동가들과 이스라엘의 초기 지도자들은 엄격한 유대교 신자들이 아닌 세속주의자들이었지만, 유대교 율법과 성경 외에는 다양한 '유대인'들을 하나로 결집시킬 요소가 존재하지 않음을 발견했다. 시온주의 운동의 주류이자 초기 이스라엘 정착민들의 다수를 차지하던 동유럽 - 아슈케나지 - 유대인들의 기존 문화와 역사, 그리고 이디시어는 게토의 문화, 탄압과 박해, 나약함과 결부된 것으로 여겨져 거부되었다. 이스라엘 건국 초기부터 1970년대까지, 이스라엘에서는 '비참한 유배의 언어'인 이디시어의 사용이 금지되었다. 이디시어가 모어인 슐로모 산드는 1970년대까지는 스스로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이 감히 유배 시기의 비참한 언어인 이디시어를 쓰고 있다고 말할 수 없었다는 개인적 경험을 전한다. 오랜 역사를 거치며 자라나고 발전한 아슈케나지 유대인들의 민중문화는 역설적으로 신생 이스라엘, 강력하고 당당한 유대인들의 국가에서는 허용되지 않았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과 중동 전쟁 이후 유입된 아랍 유대인들의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언어, 일상생활의 관습과 문화에서 아랍과 관련된 모든 요소는 전근대적이고 미개한 '동방'의 요소로 여겨져 부정적으로 간주되었다. 따라서 아랍 출신 유대인들에게 아랍과 자신들이 구분됨을, 자신들이 유대인임을 주장할 수 있는 유일한 요소는 오직 유대교였다.

이스라엘 건국 이전의 다양한 유대인 집단들의 기존 문화와 역사를 부정한 신생 이스라엘에게 따라서 유일하게 남은 정체성 구성 요소는 유대교와 관련된 요소들 뿐이었다. 팔레스타인 땅에서의 이스라엘 국가 건립의 정당화 근거 역시 성경의 '약속된 땅'의 담론 외에서는 찾을 수 없었다. '누가 유대인인가'를 규정할 기준 역시 유대교의 전통적 율법에 따른 기준 - 모계 혈통을 통한 계승 - 외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디시어, 아랍어 등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던 이주자들을 하나로 묶어내기 위해 선택된 언어 역시 결국 구약의 언어인 히브리어였다. 슐로모 산드는 이처럼 신생 이스라엘의 새로운 유대인 정체성을 구성하기 위해 이용된 근거의 대부분이 유대교와 성경에 토대를 두고 있음을 지적하며, 이런 상황 하에서 세속적 유대인의 정체성이 가능한지에 대해 의문을 던진다.

슐로모 산드는 민족정체성 및 종교정체성은 다른 정체성 구성요소들과는 다르게 강력한 배타성 - 즉 무슬림인 동시에 기독교도일수는 없고, 한국인인 동시에 일본인일 수는 없는 - 을 지니며 배타적 충성심을 요구하는 정체성, 즉 "모자와 외투"처럼 마음먹은 대로 바꿀 수도 없고 원하는 대로 다른 정체성과 함께 착용할 수 없는 정체성 구성요소라고 본다. 이러한 강력한 배타성은 민족과 종교에 특별한 힘을 부여한다. 더 나아가 유대 민족의 정체성을 역사적으로 불변의, 고정적인, 본질적인 무언가로 보는 시각은 유대인 정체성이 지닌 배타성을 더욱 강화한다.

슐로모 산드의 분석대로 이스라엘의 유대인 정체성이 결국 유대교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정체성이라면, 종교와 민족이라는 두 배타적 요소가 서로 결합한 형태인 이스라엘 정체성은 더욱 강력한 배타성, 즉 타자에 대한 더욱 강력한 거부와 배제로 이어질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온전한 이스라엘의 시민, 즉 유대인이 되기 위해서는 어머니로부터 유대인의 피를 물려받음으로써 유대 혈통을 지녀야하며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스라엘 국가로부터 유대인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혈통으로 유대인임을 증명할 수 없는 자는 무신론자든 반종교주의자든 개인의 신앙적 지향과는 상관 없이 무조건 유대교로 개종하고 절차를 거쳐 인정받아야만 한다.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은 종교와 혈통이라는 두 장벽으로 철저히 분리되어 있다. 그런 장벽을 넘어야만 유대국가 이스라엘에서 시민으로서 완전한 권리를 누릴 수 있다. 유대인으로 태어났다고 분류된 자는 영원히 유대인이며, 비유대인으로 규정된 자는 영원히 비유대인으로 남는다. 이스라엘 시민권을 지닌 비유대인 아랍인은 결국 배타적이고 본질적으로 규정된 유대인의 국가 이스라엘에서 2등 시민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싫으면 개종하고 유대인으로 인정받든가.

다나미 아오에가 지적하듯이, 이스라엘에서 태어나 나고 자라고 이스라엘 사회에 살면서 히브리어를 쓰는 아랍인은 자기가 속한 나라에서 경계와 감시, 때로는 탄압의 대상이 되지만 이스라엘의 땅을 밟아보지도 않은, 유대인으로 분류된 중국인이나 미국인은 법률에 규정된 '귀환자'의 자격을 지니고 쉽게 이스라엘 시민권을 취득하고 온전한 권리를 누릴 수 있다. '중동 유일의 민주국가'인 이스라엘의 역설이다.

4. 세속적 유대인 정체성을 구성하는 근거를 찾기 위해 슐로모 산드는 역사에 눈을 돌린다. 즉 지난 2,000년 간의 탄압과 박해의 역사, 그리고 특히 홀로코스트의 기억이 유대교 외의 유대인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라고 그는 분석한다. 폴란드 유대인 시인인 율리안 투빔(Julian Tuwim)이 말한 대로, "흘린 피 때문에 유대인이 된다." 슐로모 산드는 "지구상에 마지막 반유대주의자가 남아 있는 한 유대인으로 남겠다."라는 일리야 에렌부르크(Ilya Ehrenburg)의 말을 받아들였다고 말한다. 언어와 문화, 역사는 다를지언정 다수 사회에 의한 탄압과 박해, 그리고 홀로코스트라는 전대미문의 대학살은 종교가 없는 유대인들을 하나로 결속해주는 강력한 접착제 기능을 수행한다.

탄압과 박해의 역사는 곧 영웅적 저항의 역사와 쌍을 이룬다. 이스라엘 건국 초기에는 탄압과 박해보다는 유대인들의 영웅적 저항의 역사가 특히 강조되었다. 마사다 저항의 역사, 마카베오 반란, 그리고 1943년 바르샤바 게토 봉기, 이스라엘 독립전쟁의 저항과 투쟁 등의 이야기들은 다양한 의례, 행사, 기념일 등을 통해 현재와 연결되고 이스라엘 정체성의 핵심을 구성해왔다. 이스라엘 사관학교 생도들이 마사다를 방문, 정상에서 "마사다는 다시 함락되지 않으리라"라고 외친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유대인들의 올림픽'인 마카비아 대회(Maccabiah Games)는 로마에 맞서 저항한 바르 코크바 반란으로부터 1800년 뒤인 1932년에 맞춰 첫 대회가 개최되었고, 대회의 이름은 셀레우코스 왕조에 맞선 유대 지도자인 유다 마카비의 이름을 따서 붙여졌다. 홀로코스트에 대한 추모와 기억도 저항에 대한 기억 속에서 이루어졌다. 1953년, 홀로코스트 피해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기념일인 '욤하쇼아', 즉 '쇼아(홀로코스트)와 영웅을 위한 기념일'은 1943년 바르샤바 게토 봉기 기간에 맞춰(그리고 유월절을 피해) 유대력 니산월 27일로 지정되었다. 다나미 아오에는 이러한 날짜 선정을 무력하게 끌려가 살해당한 유대인들이 아닌, 용감히 맞서 저항한 유대인들에 더욱 강조점을 두려는 의도에 따른 것으로 해석한다.

저항과 투쟁의 기억에 대한 강조와는 반대로 이스라엘 건국 초기에는 홀로코스트의 기억과 피해는 은폐되었다고 슐로모 산드는 말한다. 그 기억 자체가 너무나 끔찍하기도 했으며, 유대인들의 무력함과 나약함을 상기시켰다. 그리고 생존자들 - 일부는 비열한 방법을 통해 살아남았다 - 은 그 일에 대해 말하고자 하지 않았다. 산드에 따르면 1970년대까지 홀로코스트는 이스라엘의 교과 과정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60년대 말과 70년대 들어 강조점은 변하기 시작한다. 특히 1967년 3차 중동전쟁의 승리가 그 계기였다. 더 이상 이스라엘과 유대인은 무력한 약자가 아닌, 압도적 강자가 되었다. 이제 확실한 우월감과 안정감을 지니게 된 이스라엘과 유대인은 과거의 고통의 역사를 인정하고 부각할만큼 강해졌고, 이에 따라 탄압의 기억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슐로모 산드는 이 시기 이후 영웅주의와 저항의 역사는 이야기 속에서 물러나고, 과거에는 나약하다는 이유로 숨겨진 유대인 희생자들이 '순교자'로 불리며 그 자리를 대체했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 산드는 바로 이 기간 들어 유대인들이 홀로코스트가 남긴 "고통에 대한 특별하고도 독점적이며 전적인 민족적 소유권"을 요구한 시기라고 지적한다. 홀로코스트의 피해를 독점함으로써 홀로코스트의 다른 희생자들 - 집시, 러시아인들, 폴란드인들, 공산주의자들, 반나치 운동가들 등등 - 은 저편으로 치워지고 오직 유대인만이 유일한 희생자로 부각되고 기억된다. 이스라엘은 유대인들이 당한 학살은 다른 학살 - 예를 들면 터키의 아르메니아 학살 - 과는 다른 특별한 범죄임을 강조하며, 유대인은 특별하고 특수한 희생자로서 다른 모든 피해자들과 민족들과 구분됨을 주장한다. 이스라엘을 적대하는 모든 세력과 인물들 - 가말 압둘 나세르, 사담 후세인, 야세르 아라파트, 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드 - 은 히틀러와 나치와 동일시되며, 이를 통해 특수한 희생자로서 이스라엘과 유대인이라는 주장을 강화한다.


모든 희생자를 기억하라 - 어디까지?
이스라엘의 홀로코스트 기념관, 야드 바쉠(Yad Vashem)
http://www.haaretz.com/israel-news/.premium-1.752754


홀로코스트의 (유일하고 특별한) 피해자로서의 유대인이라는 인식은 다양한 국가와 사회의 유대인들에게 강력한 소속감의 근거를 제공한다. 뉴욕에 살든 바그다드에 살든, 영어를 쓰든 아랍어를 쓰든 그들은 역사상 유례없는 범죄의 희생자로 지목되었던 집단에 속해 있는 것이다. 이처럼 '선택된 민족'이라는 과거의 종교적 정체성이 '선택된 희생자', 더 나아가 '독점적 희생자'라는 현대적이고 세속적인, 그리고 효과적인 정체성으로 대체되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독점적이고 특수한 희생자의 지위가 많은 세속적 유대인들의 유대인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라고 산드는 분석한다.

5. 종교와 민족이라는 두 개의 배타적 정체성의 결합, 그리고 탄압과 박해의 역사에 대한 강조라는 이스라엘 유대인 정체성의 두 특성은 오늘날 이스라엘의 대내외 행보와 정책 그리고 이스라엘 문화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다. 이스라엘의 피포위 인식은 바로 이러한 이스라엘 유대인 정체성이 만들어낸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과거의 탄압과 박해, 그리고 홀로코스트의 기억은 현재 이스라엘이 처한 상황과 결합하여 이스라엘과 유대인이 위협적인 아랍 세계와 무슬림 세계에 포위되어 있다는 피포위 인식을 형성한다. 이러한 피포위 인식은 팔레스타인 및 아랍 세계에 대해 이스라엘이 보이는 강경하고 폭력적 행보를 홀로코스트의 재발 방지 그리고 유대인과 이스라엘의 생존을 위해 필요하다는 정당화를 가능케 한다. 또한 이러한 피포위 인식은 유대인이 과거에 경험했던 박해와 학살을 방지하기 위한 유일한 보루로서 이스라엘의 존재, 그리고 그 국가의 유대 국가 정체성을 정당화한다.

6. 슐로모 산드가 제시한 배타성, 타자에 대한 적의와 피해의식에 토대를 둔 유대인 정체성은 피포위 인식과 이스라엘을 유대 민족의 유일한 안식처로 보는 시각을 만들어내며, 이는 이스라엘의 서안과 가자 지구의 팔레스타인인들 및 이웃 아랍 국가에 대한 대외적 정책뿐만 아니라 사회 내부의 비유대인들, 특히 아랍인들에 대한 태도 역시 결정한다. 다나미 아오에의 "이스라엘에는 누가 사는가"는 바로 이 문제를 다루는 책이다. 그녀는 유대 국가를 표방하는 이스라엘 내에서 아랍인들이 '부재자' -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 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녀는 다윗의 별, 시온, 귀향 등과 같은 유대교적 요소가 강하게 나타나는 이스라엘의 국기, 국가와 같은 국가 상징은 오직 유대인만을 대변하며, 역시 이스라엘의 시민인 아랍인에 대해서는 일체의 고려도 없음을 지적한다. 근면성실과 자조, 공동체주의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키부츠들은 설립 이전에는 그 땅이 '아무것도 없던 황야'이었음을 강조하며 키부츠 부지에 원래 존재하던 아랍인 마을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새로운 유대인 정착촌은 이전에 있던 아랍 마을의 이름을 빼앗아 점유하고, 이렇게 원래 고향에서 쫓겨난 아랍인들이 세운 마을은 합법적 주거지역으로 인정받지 못한 채 공공 서비스에서 배제되며 때로는 철거의 위협에 시달린다. 발전하고 깔끔한 유대인 정착촌과 도시 내의 유대인 거주지역과는 다르게 아랍인 마을과 거주지역은 열악하고 낙후되어 있으며, 이러한 물리적 장벽은 곧 유대인 사회와 아랍인 사회의 문화적, 심리적 장벽을 만든다. 이스라엘의 거의 모든 토지는 정부 소유이며,
토지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이를 정부로부터 임대해야 한다. 유대인들은 49년의 장기 임대를 비교적 쉽게 받을 수 있는 반면 아랍인들에게는 쉽지 않다. 설령 장기 임대가 가능하더라도, 지금 이스라엘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많은 토지 중 많은 수는 원래 그 땅에서 살다 난민이 된 팔레스타인 농민들의 땅이었음을 다나미 아오에는 지적한다.

7. 특히 다나미 아오에는 이스라엘의 징병 정책이 지닌 아랍인에 대한 배제적 성격에 주목한다. 모든 이스라엘 시민은 징병 대상이지만, 아랍인 - 정확히는 아랍 무슬림. 아랍인이라도 드루즈인은 징병 대상이다 - 들은 면제된다. 다나마 아오에에 따르면 이스라엘 군대는 유대인과 이스라엘 정체성 형성, 즉 '국민화' 기능을 수행하는 핵심 기구이며, 다양한 배경을 지닌 이민 2세 유대인들에게 히브리어를 가르치고 이스라엘인이라는 결속감과 연대의식을 부여하는 동시에 아랍에 대한 적대감 역시 가르치는 곳이다. 이런 상황에서 설령 군에 입대하고자 하는 아랍 무슬림일지라도 군이 지향하는 '국민화' 과정이 본질적으로 '유대 민족의 국가인 이스라엘의 국민화'임을 의미하기에, 스스로가 속한 공동체와 완전한 관계 단절과 아랍 정체성의 부정을 의미하는 입대를 선택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또한 집단에 따른 의무의 차이는 결국 각 집단이 국민으로서 누릴 수 있는 권리의 차이로 이어진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병역의무를 끝마친 자에 대한 경제적, 사회적 혜택이 많은 이스라엘에서는 병역이 단순한 의무가 아닌 권리라고 다나미 아오에는 지적한다. 이스라엘의 많은 직장들은 구인 조건으로 '병역필'을 내걸고, 따라서 군대에 가지 않은 - 또는 못한 - 아랍 무슬림들은 이렇게 경제적, 사회적 영역에서도 밀려난다.


이스라엘의 예쉬바
출처: https://www.nytimes.com/2014/03/13/world/middleeast/israel-restricts-exemptions-from-military-service.html


아랍인 외에도 아직까지 이스라엘에서 징병 대상이 아닌 집단은 유대교 종교교육기관인 예시바(Yeshiva)에 다니는 정통파 유대인들 - 2012년, 토라 교육으로 이들의 병역을 '대체'하는 법안이 이스라엘 헌법재판소로부터 위헌 판정을 받았다. 2014년에는 새로운 징병법이 통과, 예쉬바 학생들 중 1,800명을 제외하고는 반드시 입대하도록 변경되었다. 이후 이들 정통파 유대인들은 징병에 반발, 2014년 대규모 시위를 조직했으며, 아직까지 일부 집단의 반발은 계속되고 있다. 반발을 이기지 못한 이스라엘 정부는 2017년에 시작되기로 한 정통파 유대인들에 대한 전면적 징병을 2020년으로 연기했다. - 이다. 두 집단 모두 병역으로부터 면제되거나 '특혜'를 누리고 있지만, 그 이유는 사뭇 다르지 않을까하고 생각한다. 즉 예쉬바의 정통파 유대인들은 토라를 공부하고 유대교의 규범과 율법을 지키는 일이 "유대 국가인 이스라엘의 최고 우선순위"라고 주장한다. 2014년 새로운 병역법이 통과되었을때 정통파 유대인의 정당인 통합 토라유대교당(United Torah Judaism party)의 의원은 "이스라엘이 스스로를 유대 국가라고 할 수 있는 자격을 상실했다."라고 비난했다. 이스라엘이 스스로를 유대 국가로 규정했기에, 그리고 슐로모 산드가 지적한대로 유대 정체성과 유대교를 떼어놓을 수 없기에 병역이라는 국민적 의무를 수행하지 않더라도 이들 정통파 유대인들은 이스라엘 국가 정체성의 핵심적 구성 요소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으며 이스라엘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요구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정부 역시 그러한 점을 알기에 징병에 대한 이들의 거부와 반발을 무시하고 밀어붙일 수 없는 상황이다. 유대 국가인 이스라엘에서 유대교 율법을 근거로 한 주장을 묵살할 수는 없는 일이기에.


정통파 유대인들의 징병에 반대하는 2014년의 시위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Protest_against_conscription_of_yeshiva_students


반면에 아랍인들은 다른 상황이다. 이스라엘이 적대적 아랍 국가들에 둘러싸인 상황에서, 보편적 이스라엘 시민/국민 정체성보다는 유대 정체성을 강조해온 이스라엘 국가는 자국 내 아랍인들의 '충성심'을 믿을 수 없게 되었다. 내부의 적에게 총을 쥐어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반면에 같은 아랍인이더라도 아랍 세계 내에서 소수자이자 종교적 차이로 인해 외부 아랍 세계와의 연대의식이 비교적 낮은 드루즈 아랍인들은 비교적 믿을 수 있기에 징병의 대상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정통파 유대인들이 받는 병역면제가 특혜라면, 아랍 무슬림들의 병역면제는 이들이 믿을 수 있는 100% 이스라엘 시민이 아님을 인증하는 일종의 차별인 셈이다. 정통파 유대인들도 군대에 가야한다는 - 유대인 국민으로써 국민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 목소리는 커지는 반면, 아랍인들 역시 군대에 가야한다는 목소리가 여전히 약한 것은 애시당초 이들을 같은 국민으로 보는 시각이 여전히 취약함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이스라엘의 다수 유대인들은 이스라엘 아랍인들은 같은 의무와 권리를 누려야하는 국민이 아닌, 언제든지 총부리를 돌릴 수 있는 내부의 제5열로 보는 것은 아닐까. 이스라엘 내 아랍인들의 인구 증가는 많은 유대인들에게 '위협'이며, 해외 유대인들의 이주를 늘리기 위해 기를 쓰는 것이 오늘날의 이스라엘이다.

8. 글의 서두에도 언급했듯이 이스라엘은 오늘날 중동 어느 국가보다 현대화되고 발전되고 서구화된 사회이다. 아오에가 만난 이스라엘 내 아랍 여성운동가는 "차라리 모든 중동이 이스라엘이 되면 좋겠다."라고 말할 정도다. 여전히 폐쇄적이고 억압적인 아랍 사회와 대비되는 이스라엘 사회의 이러한 '발전'은 그러나 역으로 이스라엘 사회가 지니고 있는 차별적이고 배타적인 성격에 대한 비판을 차단하고 현재의 차별적인 구조, 유대인 우위의 질서를 정당화한다.

사실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는 그 시작부터 차별과 우열의 구분에 토대를 두고 있었다. 시온주의 운동의 창시자인 테오도르 헤르첼이 지향한 팔레스타인의 유대 국가는 바로 "야만에 대한 문명의 전초기지"였다. 헤르츨의 이런 목표는 이스라엘이 중동에 위치한 문명과 서구문화의 유일한 근거지이자 "중동 유일의 민주주의 국가"라는 인식으로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현재 이스라엘이 거둔 모든 성취와 발전 이러한 인식을 유지하기 위한 훌륭한 근거를 제공한다. 물론 모든 사회와 국가, 집단은 타자와의 비교와 대비를 통해 스스로를 규정짓고 일정 정도 우월감을 주장하지만, 이스라엘과 유대인의 경우에는 그 정도가 더욱 강하게 드러난다.

이스라엘 사회가 중동에서 가장 개방적이고 자유로우며 역동적인 사회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스라엘 사회 내에서 유대인이 아닌 시민에 대한 다양한 층위의 차별과 배제가 존재하는 것 역시 사실이다. 그 둘을 혼동하거나 하나가 다른 하나를 상쇄해야 될 이유는 전혀 없다. 아파르트헤이트 시기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짐바브웨나 우간다에 비하면 훨씬 나은 상황에 있었지만, 그렇다고 아파르트헤이트를 옹호하지는 않듯이 말이다. 그리고 차별적이고 배제적 문화와 사회가 지속되는 한, 일부 유대인이 주장하는 관용과 공존은 결국 '유대인의 확고한 우월적 지위를 인정하는 한에서의 공존'일 뿐이라고 아오에는 지적한다.

9. 슐로모 산드와 다나미 아오에는 현재 이스라엘의 점령 정책의 궁극적인 원인은 이스라엘 정치인들의 유별난 사악함이나 오만함이 아닌, 더 깊은 층위, 이스라엘 사회 전체에 뿌리내린 타자에 대해 배타적이고 적대적이며 우월감을 주장하는 유대인 정체성과 일상에서 생산되고 유지되고 확산되는 이스라엘 문화에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스스로부터 그러한 사회의 한 구성원인 슐로모 산드는 결국 스스로 배타적 공동체인 유대인에서 벗어나기를, "유대인이기를 그만두기로" 선언한다.

물론 산드 개인의 선언이 하루아침에 유대인 정체성의 해체로 이어질 수도 없고, 이스라엘 및 유대인 공동체 내에서 큰 호응을 얻을 것 같진 않다. 정체성은 뚜렷한 역사적 근거와 실체화된 문화와 행위 없이도, 추상적이고 인위적인 감정에 의해서도 유지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떻게 되었든 한번 형성되고 자리잡은 정체성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여러 정체성들 중에서 중요도가 변하긴 한다.) 유대교를 믿지는 않지만 1년에 한두 차례 또는 삶의 특별한 순간에만 유대교 의례를 따르거나 아예 일체의 종교적 수행이 없는 모든 '유대인'들이 과연 산드와 같은 고민을 지니고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의심할지는 의문이다. 또는 모든 유대인들, 설령 이스라엘의 유대인들이라도 스스로의 정체성을 산드가 주장한 것과 같은 배타적 종교성과 피해와 탄압의 역사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한 사회의 정체성과 문화에 대한 이해는 사실 짧고 간단한 르포 한 권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오늘날 이스라엘 사회가 확실히 내적 모순을 지니고 있다는 것 자체는 부정할 수 있을까. 사회 내의 특정 집단을 배제하고 그 집단에 대한 우월감으로 유지되는 사회가 얼마나 건강할 수 있을까. 오늘날 이스라엘 정치와 사회, 문화 많은 영역에서 피포위 인식과 피해의식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타자에 대한 그러한 부정적, 적대적 감정에 의존한 정체성은 때로 위험한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까(오늘날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정책이 보여주듯이). 유대인들만이 누리는 자유와 개방성을 넘어 이스라엘이라는 영역 내의 모든 집단에 대한 자유와 보편적 권리 보장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그로 인한 불만과 악영향을 이스라엘이 언제까지 통제하고 억누를 수 있을까. 부정적, 배타적, 적대적 감정에 근거하여 유지되는 정체성과 이스라엘 문화와 사회는 얼마나 유지될 수 있을까. 위 책들을 읽으면서 이런 의문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오늘날 이스라엘이 이룩해낸 발전과 성과는 척박한 사막에 피워낸 꽃일까, 아니면 언젠가는 무너져내릴 수밖에 없는 취약한 모래땅에 세운 누각일까.

PS.

슐로모 산드는 1988년부터 텔아비브 대학교에서 재직, 1995년부터 조교수, 2002년에 정교수가 되고 2014년에는 명예교수가 되었다. 텔아비브 대학교에서 교수로 지내면서 그는 유대인의 역사적 신화를 해체하는 여러 연구를 했는데, 대표적으로는 "유대인의 발명(The Invention of the Jewish People, 2008년 히브리어로 출간)", "이스라엘 영토의 발명(The Invention of the Land of Israel, 2012년 히브리어로 출간)"이 있다. 이번에 소개한 "유대인, 불쾌한 진실(How I Stopped Being a Jew)"은 2013년에 프랑스어로 먼저 출간되었다. 이스라엘과 유대인의 정체성과 역사적 신화의 핵심적 사건들에 대해서 날선 비판을 이어왔지만 그가 교수직에서 짤렸다거나 정치적 탄압을 받았다거나 문 앞에 단검이 꽂혀있었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아직 찾지 못했다.

1992년, 카이로 대학교 아랍어와 아랍문학학과 부교수였던 나스르 아부 자이드(Nasr Abu Zayd)는 정교수가 되기 위한 심사에서 그의 과거 연구가 코란을 신성한 알라의 말씀이 아닌 작성 시기의 역사적, 문화적 환경과 상황이 반영된 역사적 사료로 보고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것이 문제가 되어 심사에서 탈락했고, 이슬람주의자들이 이를 문제 삼아 그를 고소했다. 이집트 법원은 그가 "불신자"라고 판결을 내렸고 부인과 강제 이혼을 시켰으며, 아즈하르 대학교의 교수 일부는 그에 대한 사형을 촉구했고, 이슬람 극단주의 조직은 살해협박을 했으며, 심지어 그를 보호하던 경찰들도 "불신자(kafir)"라고 불렀다. 결국 나스르 아부 자이드는 1995년 해외로 망명을 떠났고, 죽을 때가 되서야 이집트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 두 인물의 궤적은 이스라엘과 아랍 사회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두 인물 다 자신이 속한 사회의 핵심적 가치와 신화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슐로모 산드는 교수 자리를 유지하며 이스라엘에서 아직도 살고 있다(물론 비슷한 반시온주의 학자인 일란 파페Ilan Pappé의 경우 살해협박은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나스르 아부 자이드는 소수 극단주의자뿐만 아니라 공권력까지 그의 목숨을 위협하고 탄압하고 결국 해외로 도망갈 수 밖에 없었다. 이스라엘을 모래 위의 누각이라고 한다면, 현재의 아랍-무슬림 사회 대부분은 아직 여전히 황야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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