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이 짓을 하는가 - 변명과 방명록



테러범의 블로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본 블로그는 무작위적으로, 긴 간격을 두고 갱신됩니다.

라프산자니의 죽음은 이란 정치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이란

사실 사진으로는 하메네이가 더 나이들어 보이는데, 실제는 라프산자니가 1934년 생으로 1938년 생인 하메네이보다 더 나이가 많습니다. 수염이 이렇게 노안을 만듭니다. 


라프산자니의 죽음은 이란 정치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샤히르 샤히드 설레스(Shahir Shaid Thalith), 언론인, 정치분석가
BBC Persian, 2017. 1. 11

1989년 이란의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사망하기까지 의심의 여지 없는 이란의 2인자는 아크바르 하쉐미 라프산자니였다. 라프산자니와 호메이니의 가까운 관계, 그리고 그가 지닌 영향력은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그러한 이야기들 중에서도 라프산자니의 적과 지지자 모두가 동의하는 하나는 그가 이라크와의 전쟁을 끝내도록 호메이니를 설득한 인물이라는 점이다. 이에 대해서 일부는 라프산자니가 이란을 파괴와 죽음에서 구했다고 평가하는 반면, 다른 일부는 그가 혁명의 목표를 배신했다고 비난한다.


호메이니 사후 새로운 최고지도자를 뽑기 위한 1368년 코르더드 14일(1989년 6월 4일)의 전문가의회 회의에서 라프산자니는 아야톨라 하메네이를 최고지도자가 선출되는 데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하메네이 스스로도 그가 최고지도자가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나는 단 한 순간도 내가 그런 직책을 맡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항상 내 자신이 그렇게 중요하고 위험한 직책은 고사하고 그보다 더 낮은 직책을 맡기에도 모자라다고 생각했었다." 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메네이가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호메이니의 행보와 정책을 바꾸려 하지 않았던 것은 아마 이러한 이유에서일 수도 있다. 하메네이 이후에도 미국은 대(大)악마였고, 미국과의 관계 개선과 화해의 가능성은 봉쇄되었다.

라프산자니의 생각은 달랐다. 호메이니의 말년의 순간, 그 누구도 미국과의 화해 가능성에 대해서 말할 용기를 낼 수 없던 순간, 라프산자니는 호메이니에게 쓴 편지에서 "미국과 어떠한 대화도 하지 않고 어떤 관계도 맺지 않겠다는 현재의 경솔한 판단은 결코 오래 지속될 수 없다."라고 언급했다. 

라프산자니는 미국과의 관계 문제에 있어 호메이니와는 다른 생각을 지녔다.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그는 하메네이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미국과의 관계 재개의 문을 열고자 노력했다. 비록 그의 시도가 미국의 무반응으로 좌절되었지만 그는 계속해서 "미국에 대한 반감은 결코 영원한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으며 하메네이의 격렬한 반발에 부딪혔다.

대통령 재임 시기 이란 정계에서 라프산자니는 큰 타격을 입었다. 서방, 심지어 미국과도 관계 개선을 꾀하는 와중에도 베를린의 미코노스(Mykonos) 식당에서 쿠르드 민주당 지도자들을 암살한 사건은 라프산자니의 의도에 대한 의문을 야기했다. 이로 인해 서구와의 관계 재개를 위한 라프산자니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고 모든 유럽 국가들은 이란 주재 자국 대사들을 소환했다. 

또한 라프산자니 재임 기간에도 강력한 보안 조치와 반대파에 대한 탄압은 지속되었다. 뿐만 아니라 경제 자유화 정책은 50%에 달하는 인플레이션 상승과 일부 도시들에서의 대규모 시위를 초래하기도 했다. 대통령 시절 인기를 크게 잃은 라프산자니는 대통령 임기를 마친 뒤 2000년 대선에 출마했지만, 테헤란 선거구의 총 30명의 후보 중 꼴찌라는 성적을 거둔 뒤 결국 사임했다. 



<이란 정치의 네 세력의 대표들 - 중도파 라프산자니, 개혁파 하타미, 최고지도자 하메네이, 그리고 강경보수파 아흐마디네자드>


아흐마디네자드 시기, 라프산자니는 강한 비판에 직면했고 결국 완전히 주변으로 밀려났다. 그러나 2009년 시위가 정점에 달하자 그는 몇 년만에 다시 정치 전면으로 돌아왔다.

라프산자니는 결코 개혁파가 아니다. 그러나 그는 개혁파의 확고한 지지를 얻었다. 2009년, 그리고 그 이후 그가 취한 보수파에 대한 대립 노선이 그의 정치적 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계산이었든 생각의 변화가 있어서였든, 그의 이러한 입장 변화는 도시 중산층에서의 라프산자니의 인기 상승을 견인했고 결국 그는 다시 이란 정치에서 중요 인물로 부상할 수 있었다.

2009년 시위를 그렇게 공개적으로 지지한 인물은 "피트나(내란)"을 선동했다는 명목으로 수감되거나 그 지위를 박탈당했다. 그러나 라프산자니는 3년 뒤 하메네이를 통해 국익판별위원회(Majma-e Tashkhis-e Maslahat-e Nezam, 이란 국회와 법안의 위헌 여부를 심사하는 수호자 회의(Shura-e Negahban) 사이를 중재하는 기구)의 5년 임기의 위원장으로 임명되었다. 즉 라프산자니는 주변부로 밀려나기 전보다 오히려 더 영향력이 강한 거물로 성장했다. 아흐마디네자드 시기 그의 축출은 정권 내에 깊은 분열이 존재하며 그 기반이 취약함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해석된 바 있다. 또한 지난 2월 전문가 의회(Majles-Khabargan, 최고지도자 선출 기구) 선거에서 라프산자니는 가장 많은 표를 얻음으로써 그의 인기가 더욱 높아졌음을 보여주었다. 


<혁명동지의 죽음을 슬퍼하는 하메네이>
그는 장례식 이후 혼자의 거처로 돌아가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라프산자니의 사망이 이란 정치에 끼칠 영향은 크게 아래 네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라프산자니의 죽음 및 강경급진 세력 성장 위험에 대한 중도파의 기민한 대응은 도시에서 지지세가 강한 반-강경파 진영을 다시 전면으로 끌어올 수 있다. 이번 대선에서 나타날 수 있는 이런 가능성은 로우하니의 재선 성공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라프산자니(그리고 물론 하타미)의 지지는 지난 대선 시기 그리 영향력 있는 인물이 아니었던 로우하니의 당선 요인 중 하나였다.

둘째, 라프산자니의 죽음으로 중도파와 개혁파는 "체제 내의" 강력하고 전략적인 보호자를 잃었으며, 이로 인해 중도-개혁파에 대한 강경파의 압박이 강화될 수 있다. 비록 라프산자니가 공식적으로 보수파의 압력을 막아낼 수 있는 어떤 지위에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가 누리는 지지와 정권 내에서의 견고한 입지로 인해 강경파는 항상 라프산자니가 그들을 견제하고 있다고 느껴왔으며, 이로 인해 어떤 강경한 조치를 취하는 데 자제해 왔다. 

지난 총선 당시 후보자들의 자격 심사 과정에 대한 라프산자니의 강한 비판은 결국 후보자 심사 권한을 지닌 수호자 회의가 물러나게 만들었다. 이는 결국 모함마드 야즈디(Mohammad Yazdi) 및 모함마드 타기 메스버흐(Mohammad Taghi Meshbah)와 같은 보수파 거두들이 전문가 회의 선거에서 낙선하고, 테헤란 선거구에서 보수파가 전멸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셋째, 전문가 회의에서 라프산자니 지지세력은 과반수를 차지하지 못한 상황이다. 그러나 하메네이 사망 시, 라프산자니는 강경파가 새로운 최고지도자로 선출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30명의 의원을 끌어모을 수는 있었다(최고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최소 88명 의원 중 1/3의 찬성표를 얻어야 한다). 비록 로우하니가 전문가 회의 의원이기는 하지만 라프산자니가 의원들 사이에서 누리던 지위와 평판은 지니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앞으로 8년 내에 하메네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전문가 회의의 임기는 8년임), 강경파가 새로운 최고지도자가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강경파인 서덱 러리저니(Sadeq Larijani)가 유력하다는 소문이 현재 퍼져 있다. 

<서덱 러리저니>
"앞으로 국제면에서 저를 자주 만나실 수도 있을 것 같군요 후후후후"

넷째, 하타미의 목소리가 완전히 묻혀진 현 상황에서 새로운 최고지도자의 자리를 중도파로 가져올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은 하산 로우하니뿐이다. 중도파에게 희망적인 소식은 하산 로우하니가 아직 68세로 그렇게 나이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타미가 그러했듯이 만약에 로우하니가 강경파의 압박에 의해서든 자연스러운 방식에 의해서든 어떤 식으로든 주변으로 밀려나면, 당분간 그를 대체할 인물은 등장하기 힘들 것이다. 장기적으로 하산 호메이니가 어떤 식으로든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호메이니의 손자, 하산 호메이니>
"할아버지의 이름을 걸고!"
........호메이니의 손자가 중도개혁파의 후보가 되는 세상이라니
 
원문: http://www.bbc.com/persian/iran-38568789

이란 정치를 보면 그저 "이슬람주의 신정체제"라는 단어로만은 환원할 수 없는 복잡성이 드러납니다. 최고지도자라는 행정부의 수반이 지닌 권력을 초월하는 존재가 있으며, 행정부, 사법부, 입법부 및 군부 등에 초월적인 권한을 누리고 있지요. 그러나 최고지도자는 다른 군부독재국가와 달리 국가 내외의 모든 일에 대한 결정을 개인 독단적으로 내리지만은 못합니다. 행정부, 입법부 및 여러 정치 세력과 인물들 역시 나름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 개인적 관계든 설득이든 다양한 방식을 통해 최고지도자를 견제하거나 그의 결정에 저항하거나 또는 최고지도자의 결정과 방향 자체를 조금이나마 바꾸기도 하지요. 

여기에 더해 이란은 행정부와 입법부에서는 비록 제한적이나마 민의가 반영되고, 하타미-아흐마디네자드-로우하니의 변화에서 보이듯이 일정 정도 민의를 반영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존재합니다. 벤 알리의 튀니지, 까다피의 리비아, 무바라크의 이집트, 아사드의 시리아, 살레흐의 예멘에서 의회는 그저 대통령의 거수기에 불과했고(심지어 리비아에는 그마저도 없었고), 제도적 장치 내에서는 무언가 민의를 반영한다던가 또는 정책적 기조를 바꿀 수 있는 방식 자체가 극히 미약했지요. 이들 나라에서 무언가 변화를 가져올 수 있었던 유일한 수단은 제도 외 정치, 즉 민중봉기였습니다.

제한적이나마 민의의 반영과 제도 내의 영역에서의 변화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현 이란 체제는 다른 아랍 독재국가들보다 비교적 유동적이고, 안정적이며 그리고 "민주적"인 체제라고 말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랍인들이 벤 알리를, 까다피를, 무바라크를, 아사드를 그리고 살레흐를 그냥 마냥 견뎌내는 것 외에 답이 없었다면, 이란인들은 적어도 하타미에서 아흐마디네자드로, 그리고 아흐마디네자드에서 로우하니로 바꿀 수 있는 선택권 정도는 있었지요.

그러나 동시에 2009년의 아흐마디네자드 재선과 이로 인한 녹색운동에서 드러나듯이, 이란 정권은 수틀리면 그런 제도적 방안도 언제든지 뒤엎을 수 있음을, 그리고 그에 대한 저항을 무자비하게 짓밟을 수 있음을 보여주었지요. 2009년에 그러했다면, 사실 앞으로도 그러지 말란 법은 없습니다. 2013년에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2017년에는 정권이 다시 한번 자기들 마음에 들지 않는 "제도권 내의 요구"에 대해서도 판을 엎을 수도 있는 가능성이야 늘 존재하지요. 라프산자니의 죽음은 정권이 판을 엎어버리는 극단적 대응을 제어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가진 인물이 사라졌음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전적으로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 그런 제어적 역할을 수행하던 라프산자니가 사라졌다고 당장 이번 대선에서 로우하니가 재선되더라도 2009년과 똑같은 반응을 보일 가능성은 적지 않나, 생각합니다. 

2005년 아흐마디네자드가 당선될 수 있던 배경에는 개혁파인 하타미의 8년 간의 재임 기간 많은 이란 사람들이 바라던 개혁이 가시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체감할 수 없었던 데에서 기인하는 환멸이 있었지요. 그렇게 집권한 아흐마디네자드는 스스로의 군부 출신 배경을 이용해 군부와 바시즈 민병대 등 무력집단 내에서 꽤 나름의 지지기반을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왜 2009년에 이란 정권이 아흐마디네자드를 다시 대통령으로 만들기로 결정했나라는 질문은 또 다른 분석과 해석이 필요한 주제입니다만, 아무튼 그 시점 정권은 적어도 그를 지켜낼 수 있는 수단, 즉 저항을 무력으로 짓밟기 위해 필요한 세력을 끌어모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재 로우하니에 대해서도 비슷하다고 볼 수 있을까요. 핵협상의 가시적 효과가 아직 드러나지 않은 상황이라지만, 하타미의 8년에 비해 핵협상 타결은 이제 1년 반 정도가 조금 지났고, 이란 사람들 대다수가 "로우하니는 이제 글렀다! 역시 강하게 나가야 해!"라고 확언하기에는 조금 이르지 않을까요. 즉 아직 로우하니가 "기대하시는 긍정적 변화가 나타나기 위해서는 제게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합니다"라고 답할 수 있고, 이 해명이 먹힐 수 있는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로우하니에 대한 지지가 완전히 환멸과 반감으로 바뀌지 않은 상황에서, 선거조작 등을 통해 그를 강제로 끌어내리면 그 때의 반발은 2009년 이상이 되겠지요. 그렇다면 이미 2009년의 녹색운동으로 한번 데인 정권이 과거의 아흐마디네자드처럼 확실하게 시위대에 맞설 수 있는 지지기반을 보유한 인물도 딱히 없는 상황에서 굳이 성급한 도박을 할 이유가 딱히 없지 않을까 하는 것이 제 의견입니다. 오히려 더 은인자중하다가 다다음 대선 때 "역시 핵협상은 그저 간 빼주고 쓸개 빼주고 민족 자존심만 넘겨준 채 얻은 것은 없었다" 라고 주장하며 - 현재 보수파들의 주장이기도 합니다 - 다시 대권을 찾아오는 시나리오가 정권 입장에서도 더욱 안정적이고 장기적 주도권을 유지할 수 있는 시나리오가 아닐까 합니다. 사실 별다른 근거는 없고 그냥 전적으로 제 개인적인 의견일 뿐입니다만.... 

위의 분석에서는 라프산자니의 죽음이 대선에 미칠 영향보다는 최고지도자 선출에 미칠 영향에 더욱 집중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도 로우하니의 재선 여부가 중요한 문제이기는 하지만, 더욱 장기적이고 핵심적인 문제는 이제 70대 후반에 팔도 하나 없고 암수술 경력까지 있는, 당장 내일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할배인 하메네이 이후 최고지도자가 누가 되느냐가 아닌가 합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이란에서 최고지도자는 정말 압도적인 권한을 지니고 있고, 향후 이란 정치와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결정지을 핵심적인 권력을 가진 인물이죠. 라프산자니와 같은 혁명의 1세대 원로들이 거의 사라져 이제 압도적인 카리스마와 권위를 주장할 수 있는 사람들도 거의 없어진 마당에서 최고지도자가 누가 되느냐의 문제는 호메이니 사후보다 더욱 치열한 논쟁과 긴장을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누가 되느냐, 그리고 새로운 최고지도자에 대해 이란 정치 및 사회 여러 영역 내의 다양한 목적과 지향점을 지닌 세력들이 어떻게 반응할 것이냐의 문제는 그리 길지 않은 기간 내에 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1 2 3 4 5 6 7 8 9 1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