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이 짓을 하는가 - 변명과 방명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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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단의 박물관들(4) - 살뜨, 과거의 영화를 추억하다 요르단

요르단의 박물관들(3) - 꺼지지 않는 아랍 봉기의 횃불

앞선 글에서 살펴보았듯이, 요르단의 박물관들에서는 이슬람 전래 이후 시대의 이야기는 거의 나타나지 않습니다. 특히 요르단 근대 국가의 바로 직전 시대인 오스만 지배 시대는 요르단 지역의 쇠퇴와 몰락을 가져온 시대로 그려집니다. 오스만 시대가 부정적으료 묘사될수록 오스만을 무너뜨리고 세워진 하쉼 왕가의 요르단 왕국은 그만큼 더욱 빛나는 발전과 진보의 시대로 조명할 수 있지요.

하지만 요르단 전역에 있는 박물관에서 이러한 서사만이 지배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번에 살펴볼 살뜨 역사박물관(Al-Salt History Museum, 또는 아부 자비르 박물관Abu Jaber Museum)이 바로 오스만 시대에 대한 다른 서사를 보여주는 한 사례입니다.

살뜨는 수도 암만으로부터 북서부로 약 25km 떨어진, 버스로 약 20-30분 정도면 닿을 수 있는 가까운 곳에 위치한 도시입니다. 발까(Balqa) 주의 주도이지만 인구는 약 88,900명(위키피디아)~124,330명(살뜨 개발기구) 정도의 작은 도시입니다. 암만 인구가 약 400만 및 다른 주요 지방도시인 이르비드가 50만, 자르까가 48만, 루사이파가 28만, 아까바가 18만 명인 것에 비하면 정말 소도시라고 할 수 있지요.


살뜨 시


특히 1867년 오스만 중앙정부가 요르단 지역에 대한 직접통치를 회복했을 때 살뜨는 이 지역의 행정 그리고 무역 중심지로 부상하면서 크게 성장했지요. 암만이 사실상 촌락이던 시절, 살뜨는 트랜스요르단 지역에서 가장 큰 도시로 번영했습니다. 오늘날의 지방 소도시로 전락한 상황에 비하면 그 시대는 일종의 황금기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그리고 19세기 오스만 시대의 도시 경관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는 살뜨는 요르단의 주요한 관광지까지는 아니더라도 관광객들이 간간히 찾곤 하는 곳입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살뜨 역사박물관에서 드러나는 오스만 시대에 대한 서사는 국립박물관에서 보이는 서사와는 차이를 보입니다.

살뜨 역사박물관은 19세기 말 이 지역의 대상인인 아부 자베르의 대저택을 개조한 건물입니다. 유럽식 건축양식을 지닌 거대한 건물로, 보존도 잘 되어 있지요.


살뜨 시.
가운데에 보이는 빨간 지붕을 가진 이층의 거대한 건물이 바로 살뜨 역사박물관입니다.



살뜨 역사박물관



역사박물관 내부의 관광안내소 - 무려 한국어로 표기가 되어 있습니다
물론 팜플렛은 다 아랍어 또는 영어로만 되어 있지만은....


이 박물관에서의 오스만 시대는 어떻게 묘사되어 있을까요? 국립박물관 등에서 보이는 오스만 시기에 대한 부정적 서술과는 달리, 살뜨 박물관에서의 오스만 시대인 19세기 말엽에 대한 정의는 간단하면서도 암만의 박물관들과 극명한 대비를 보입니다. 살뜨에서 이 시기는 다름아닌 "황금기"로 그려집니다. 이 시기를 "황금기"로 보는 서술은 박물관 내 여러 전시와 그리고 팜플렛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황금기"의 살뜨



박물관 내 연표 역시 19세기 후반-20세기 초 오스만 시기를 황금기로 서술합니다.


암만에서는 오스만 정부가 요르단 지역의 개발과 발전에 대해 전혀 무관심했다는 점이 강조된 반면, 살뜨 박물관은 19세기 말~20세기 초의 이 "황금기" 시절, 오스만 정부가 이 지역에 전신국, 모스크 및 상업단지 등 여러 시설을 건설했음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오스만의 도시개발사업을 통해 살뜨가 트랜스요르단 지역의 확고한 도시 중심지로 성장할 수 있었음을 지적하지요. 또한 박물관은 1858년 오스만 정부가 반포한 토지등록법에 따른 토지 조사 및 과세, 1891-92년 살뜨에 세워진 토지등기소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토지정리, 등기 작업으로 인해 살뜨가 이 지역의 중심 도시로 떠오르고 더 나아가 트랜스요르단의 베두윈화를 저지하는 중요하고 유의미한 기여를 할 수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이에 더해 박물관은 19세기 오스만 정부가 트랜스요르단, 특히 살뜨 지역의 발전을 위해 기울인 노력을 긍정적으로 보여줍니다. 박물관의 설명에 따르면 오스만 정부는 트랜스요르단과 같은 인구가 적은 외곽 지역에도 근대식 학교를 건설하고, 술탄 압둘하미드 2세는 교육, 보건, 교통 상황 개선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지요. 어디서도 오스만 정부의 의도적 방치나 이 시기의 쇠퇴, 후진성에 대한 내용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살뜨의 근대식 교육의 도입과 발전에 대해 다룬 전시실
전시실 내부는 어두워서 사진을 도저히 찍을 수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오스만 정부가 19세기 말에 도입한 "지방행정단위 법률(Province (velayat) law)"이 "매우 효율적인 법"이었으며, "국가가 제국 변방 지역까지 다다를 수 있는 행정 체제를 설립"했다고 서술됩니다. 북부의 이르비드와 함께 살뜨는 이 법에 따라 1867년 세워진 다마스쿠스 주(Velayat Damascus) 하의 하위구역(Kaza)으로 개편되었고 이에 따라 지역 중심지로 떠오를 수 있었지요.

이처럼 "황금기"를 거치면서 살뜨는 지역 내 주요도시로 거듭났음을 박물관은 강조합니다. 팔레스타인, 시리아, 유럽과 인도를 잇는 무역의 중심지로 부상했음을 보여주는 지도, 상업과 무역의 발전에 따라 인근 지역에서 살뜨로 이주해온 가문들에 대한 설명 등등은 관람객에게 바로 여기가 과거 무역의 중심지이자, 번영하던 상업 중심지였음을, 그리고 과거에 누리던 영화와 중심적 지위를 상기시켜 줍니다. 그리고 후에 살뜨에서 성장한 이들 상업, 무역 엘리트들이 트랜스요르단의 주요 경제세력으로 부상했음 역시 중요하게 다뤄집니다.


교역의 중심, 살뜨


인근 도시에서 살뜨로 이주해온 가문들


암만의 박물관들과 다르게, 살뜨 박물관은 살뜨만의 고유하고 자랑스러운 역사, 그리고 오스만 시대에 대한 기존 해석과는 완전히 다른 해석을 보여줍니다. 마피는 살뜨 박물관에서 드러나는 이러한 전시에 대해, 요르단의 국가 통합 및 정체성 규정을 의한 담론과는 다른 요소의 존재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을 정도로 오늘날의 요르단 국가 정체성이 확고하게 자리잡았음을 보여주는 결과라고 해석합니다(Maffi 2002, 211). 더 나아가 살뜨 박물관에서 보이는 지역의 자랑스러운 역사, 번영의 과거에 대한 강조는 이렇게 발전된 살뜨와 그 주민들이 신생 트랜스요르단 국가의 건립과 발전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는 서술을 통해 요르단의 보편적인 국가 정체성 담론과 결합됩니다. 오스만 시대 후기 교육 발전에 대한 전시에서, 이런 발전을 통해 트랜스요르단 지역의 교육 중심부로 떠오른 살뜨는 트랜스요르단 국가 건설 이후에도 그 역할을 수행, 5명의 총리와 40명 이상의 장관 등 신생 국가를 위한 관료와 정치인들을 배출해오며 국가 발전에 기여해왔음이 강조됩니다.

살뜨 지역의 과거 역사에 대한 전시는 오스만 후기의 "황금기" 시기의 발전을 통해 결국 살뜨가 현대 요르단 국가 발전에 있어서 주축적인 역할을 수행했음을 강조함으로써 요르단 국가라는 틀 내에서의 하나의 지역으로서의 살뜨의 특수성, 중요성을 웅변합니다. 살뜨 박물관이 제시하는 비교적 다른 오스만 시대에 대한 서사는 요르단 내에서의 살뜨가 점해왔던 지도적 위치를 상기시키기 위함이지, 기존의 서사를 전복하고 새로운 서사를 대체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지요. 살뜨는 요르단 국가와 분리되거나 국가 공식적 기억과는 무언가 다른 역사적 기억을 가지고 있는 지역이 아닌, 여전히 "요르단 왕관의 보석"입니다.


"요르단 왕관의 보석, 살뜨의 건축유산"



"요르단 독립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살뜨"


암만에서 버스를 타고 살뜨에 도착한 뒤 제가 살뜨에 대해 받은 첫 인상은 "전형적인 중동의 쇠락한 지방 소도시"였습니다. 좁은 길에 차는 미어터지고, 경적소리로 귀는 떨어질 것 같고, 동네는 우중충하고 길은 지저분하고.... 살뜨 관광사무소가 나름 야심차게 제시하는 "오스만 후기 건축의 정수를 느껴볼 수 있는 골목길"들은 정말 작정하고 걸어들어가면 사실 쓰레기장, 폐허, 빈민가, 버려진 건물과 잘 구분이 되지 않습니다. 잘 정비되고 쉽게 다닐 수 있는 구시가지를 상상하신다면, 살뜨에서 굉장히 당황하게 됩니다.


박물관 인근이야 잘 정비가 되어 있지만은....



골목길 조금 안쪽으로 들어가보면 낡은 집, 버려진 건물들...
그리고 저 아래 좁디 좁은 시내에서 끝없이 들려오는 경적 소리



박물관과 관광안내소에서 구할 수 있던 팜플렛, 지도, 설명문
방문객들에게 이렇게 많은 자료를 제공하는 곳은 제가 가본 곳에서는 단연코 살뜨가 최고였습니다


살뜨가 과거에 누리던 영화와 번영을 기념하고 상기시키려는 박물관 내부의 전시와, 박물관 밖에서 실제 경험하게 되는 오늘날의 실제 살뜨의 현실은 기묘한 대비가 됩니다. 살뜨 박물관은 제가 가봤던 암만의 다른 어떤 박물관보다 가장 충실한 지도, 팜플렛, 안내문 등을 제공했습니다. 관광객들과 방문객들을 위한 이러한 충실한 준비는 한때 중심의 위치를 지키던 도시가 새로운 정치적 환경 하에서 주변으로 밀려난 상황에서 어떻게든 자신의 입지와 중요성과 과거를 정당화하고 일깨우려는 발버둥같이 보이기도 합니다. 이제 지방의 중소도시로 전락하여 비좁은 도로와 낡고 허름한 건물, 쓰레기가 굴러다니는 골목길이라는 현실 속의 살뜨는, 박물관 속에서나마 한때 요르단 지역의 행정, 정치, 경제, 무역, 교육의 중심지이자 발전의 첨병이었던 과거를 그리워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Maffi, Irene(2002). "New Museographic Trends in Jordan: The Strengthening of the Nation." In Jordan in Transition, edited by George Joffe, 208-223. London: Hurst & Comp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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