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세기 이집트의 페스트 중동 역사

 14세기 몽골 제국이 극동과 서양을 연결하는 교통로를 활성화 시키면서, 양 지역간의 문물 교류도 그만큼 늘어났지만 이에 따라 재앙도 동양에서 전해져오니, 그것이 바로 페스트였습니다. 

 이 페스트가 유럽에 막대한 피해를 입힌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지만, 유럽과 동아시아를 잇는 교역로의 가운데 있던 중동-이슬람 세계라고 멀쩡할 리가 없었지요. 중동권이 의학이 비교적 발전한 편이었다고는 하나, 현재도 페스트는 그리 만만하게 볼 질병이 아닌데 14세기 의학수준으로 페스트에 맞서 효과적인 대처가 얼마나 가능했을까요. 이 지역도 막대한 피해를 입고 맙니다.

 가장 막대한 피해를 입은건 다름 아닌 중앙아시아-몽골 지역에 있던 네스토리우스 교도들이었죠. 이미 이 지역의 오랜 이슬람화로 크게 세력이 약해져서 자기들만의 공동체를 유지해 가며 살아왔는데, 난데 없이 페스트가 이 교역로를 통해 전파되었고 이 과정에서 중앙아시아의 네스토리우스 공동체는 완전히 박살이 나버리고 맙니다.

 키르기즈스탄의 이식 쿨 호수 인근의 네스토리우스 공동체의 묘비의 연도를 살펴보는 이것이 명백해지는데, 1336년까지만 해도 한 해에 한두개 정도였던 묘비가 1337~1338년에는 32개, 1338~1339년에는 72개에 달합니다. 무슨 이유로 인해 사망자수가 급격히 증가했고, 바로 페스트가 그 원인이었습니다. 이식 쿨 호수 인근의 네스토리우스 교단 공동체의 묘비는 1345년을 끝으로 사라집니다. 14세기 페스트를 전후로 이 공동체가 거의 궤멸해 버린거죠.

 중동에서는 특히 이집트가 그 타격이 심했습니다. 지중해 지역과 인도 지역에 모두 접한 이집트는 지중해 무역의 주요한 거점이었고, 이렇게 교류가 많다 보니 당연히 전염병의 위험에 더 쉽게 노출되었죠. '전염병과 인류의 역사'의 저자 윌리엄 맥닐은 여기에 이집트를 지배한 맘루크(Mamluk)에 의한 요인도 듭니다. 즉 이들이 노예를 구입하기 위해(맘루크는 원래 노예 군인을 의미하는 말로, 군인으로 시작했다가 힘을 잡아 14세기부터 이집트를 지배하기 시작합니다. 14세기 이집트는 오직 맘루크 출신만이 요직에 올랐고 주요한 업무를 담당했기에 지속적인 노예 군인의 공급이 필요했죠)페스트가 처음으로 퍼진 흑해 연안과 지속적인 접촉을 가졌다는 것이 이유 중 하나라고 주장하고 있죠.

<맘루크 기병. 주로 카프카스, 흑해 연안의 노예 출신인 이들은 무슬림 세계의 정예군으로 인정받았다.
결국에는 살라딘이 세운 아이유브 왕조를 뒤집고 아인 잘루트에서 몽골군을 처부수고 이집트를 다스리기에 이른다. 1517년 오스만에게 전투 두 번만에 망해버린다>

출처 : The Mamluks 1250–1517, Osprey Publishing



 아무튼 1347~1349년 동안 이집트 인구의 1/3이 사망했다고 합니다. 1340년대 최초 유행 이후 1517년까지 페스트 유행 횟수를 계산해보면 이집트가 31건으로 압도적으로 많고, 그리고 시리아에 20회, 이라크에 1회로 그 차이를 확연히 볼 수 있죠.

 1347년 첫번째 유행 당시 페스트는 알렉산드리아를 통해 들어와 나일 강을 따라 상이집트(남부 이집트)로 진행해 나갑니다. 이 과정에서 약 50만에 달하던 카이로의 인구 중 20만여명이 사망했고, 14세기 중반 800만으로 추정되던 이집트 인구는 이 때 1/3의 인구를 잃는 충격과 이후 간헐적으로 이어지는 페스트(위에서 언급한 맘루크 요인이 작용한 결과일지도? 다른 어느 중동 지역보다 심한 결과를 보여주니까요)로 인해 인구는 지속적 감소, 1798년 나폴레옹 침공 당시에는 겨우 300만에 달할 정도였죠.

 페스트가 이집트에 미친 영향은 막대했습니다. 도시 인구가 반토막이 났다는 건 도시 상인 계층과 도시 노동자가 반토막이 났다는 걸 의미했고 특히 항구 지역을 중심으로 퍼진 페스트의 특성 상 상인들이 우수수 죽어나갔죠. 농촌 지역 역시 피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무너져 내려갔습니다. 이집트 경제의 두 축인 상업과 농업이 이렇게 막대한 타격을 입은 거죠. 



<올드 카이로, 칸 알 칼릴리 시장, 약 6백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출처 : 지금 이집트 가 있는 후배가 촬영

'유럽 패권 이전-13세기 세계 체제' 의 저자 자넷 아부 루고드는 이러한 인구 상실로 인해 이집트 경제와 산업이 충분한 잉여를 생산하지 못하고, 이 손실분을 벌충하기 위해 맘루크 왕조가 더더욱 가혹하게 착취하고(얘네는 원래 지들끼리도 싸우기 바빴던 애들이라, 이런 상황에서 남들이라면 한번 쯤은 생각해 볼만한 경제 발전 등은 별로 고려하지 않았던듯 합니다) 그러다보니 또 경제와 산업 발전이 더뎌지는..... 저주받은 싸이클이 생겨났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 이후 이집트는 더 이상 이전에 누렸던 무역의 중심지 위치를 거의 상실하게 됩니다. 여전히 중요한 지역이긴 했지만, 오스만 통치에 있어서는 다른 지역에 우선순위가 밀렸고 무역에 있어서도 오만 상인, 포르투갈 상인, 인도 상인들에 주도권을 빼앗기게 되었죠.


 참고 도서 :
동방기독교와 동서문명, 김호동
유럽 패권 이전-13세기 세계 체제, 자넷 아부 루고드
전염병과 인류의 역사, 윌리엄 맥닐

덧글

  • 리리안 2010/11/04 07:57 #

    네스토리우스 교가 거의 전멸하게 된 것에는 티무르 제국의 티무르가 대량학살한 것이라고 알고 있었는데요, 둘이 같이 일어난 건가요 별개의 사건인가요?
  • jeltz 2010/11/04 13:30 #

    티무르 직전에 흑사병으로 인해 공동체가 거의 궤멸상태에 빠지다시피 했었죠. 티무르 정복 자체가 가져온 광역학살(종교를 가리지 않는..)로 인해 역시 큰 피해를 입었으리라고 충분히 볼 수 있겠네요.
  • 앨런비 2010/11/04 11:25 #

    뭐여. 닉넴봐꾸고 이글루로?
  • jeltz 2010/11/04 13:30 #

    바꾼게 아니라 두개인것.
  • 앨런비 2010/11/04 15:18 #

    여하튼 링크추가.
  • 들꽃향기 2010/11/16 06:18 #

    사실 오리엔탈리즘적 이슬람연구 시각에서 이집트의 산업-상업 쇠퇴를 두고 페스트를 부차적인 요인으로, 그리고 언급하셨던 페스트 이후의 맘룩들의 수탈적 양상을 주요한 요인으로 평가하던 연구들이 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ㄷㄷ;;

    특히 당시의 지식인인 이븐 할둔의 여러 언급을 인용하면서, 저 자신은 그럴수도 있겠구나 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동의를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쓰신 글을 보니 역으로 질병으로 인해 수탈이 가중된 측면이라는 역으로의 반전이 가능하겠군요.

    이에 잘 읽고 갑니다. 좀더 생각의 순서를 바꿔볼 기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 jeltz 2010/11/16 11:52 #

    18세기 나폴레옹 침략 당시 이집트의 인구가 14세기보다 못하고, 심지어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시대 때와 비슷했더란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일단 인구가 그정도로 작살이 났는데 경제적으로 예전과 같은 위치를 차지하기 힘들었겠고, 그 과정에서 페스트란것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입니다.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ㅎ
  • 기린연필 2016/04/15 11:25 # 삭제

    세계사랑 연관해서 사회복지학 공부 중인데 너무 잘 읽고 갑니다^6^ 설명도 깔끔하고 원인이랑 과정 결과까지 이해 잘 되게 적어주셨네요!! 감사합니다~~ 다른 글도 잘 읽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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