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자지라 2012년 결산 : 시리아 - 국제적인 무관심, 싸우는 혁명군들 시리아


 시리아 - 국제적인 무관심, 싸우는 혁명군들

 아흐마드 다두쉬

 2012년이 끝나가면서 22개월 째를 맞는 시리아 혁명은 아랍의 봄의 혁명들 중 가장 길게 이어지고, 그리고 아마도 가장 파괴적이며 많은 인명이 살해당한 혁명이 되었다. 2012년 동안 예상했던 것과는 크게 다른 상황 변화가 있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치적 방안의 실패와 민중 시위에서 시리아 전국의 많은 도시와 마을들을 전장으로 바꾸어 놓은 내전으로의 변화를 들 수 있을 것이다. 

 2011년 말 아랍 감시단 선발대가 처음으로 시리아에 도착했지만 대부분의 감시단은 곧 철수해 버렸고 2012년 2월 12일 아랍 연맹은 감시단 임무 종료를 선언했다. 그리고 UN 안전보장이사회에 아랍 평화 유지군 창설을 요청했다. 이 요청은 아직까지도 제기되고 있다. 

 감시단 임무 종료 선언 이전인 2월 4일 시리아 정부는 홈스의 칼리디야 구의 폭격을 중지하며 군사 작전의 중단을 선언했다. 이 결정은 UN 안보리가 아사드 대통령의 권한을 부통령에게 넘기고 정부의 폭력을 규탄하는 결의안을 표결에 붙일 때 이루어졌다. 그러나 러시아와 중국이 거부권을 행사하며 부결되자 시리아 정부는 힘을 얻어 이틀 뒤인 2월 6일 홈스에서 로켓포를 이용해 95명을 살해했다고 반정부 운동가들은 전했다. 이로써 시리아 내전은 과도기에서 내전기로 들어섰다.

 안보리가 문제 해결을 하는 데 실패하자 UN 총회는 2월 16일 137개국의 찬성으로 시리아 정부를 비난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고 아랍 국가들은 자국 대사를 시리아에서부터 소환했으며 반정부 기구인 시리아 국가 위원회(Syrian National Council, SNC)를 시리아 국민의 유일한 대표로 인정하기 시작했다. 또한 일부 국가들은 반정부군의 무장과 아랍 평화 유지군 파병을 주장하기도 했다. 

<안보리의 노력은 문제 해결을 가져오지 못했다>

 계획안들과 감시단들

 3월 안보리는 시리아 정부에게 전투 중지, 정부군와 중화기의 도시 지역에서의 철수, 물자 지원을 위한 매일 2시간 씩의 휴전을 촉구하는 코피 아난 UN 특사의 계획안을 즉각 받아들일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정부는 이것이 "시리아의 적"들에 대한 패배라고 생각했고, "국가를 무너뜨리려는 전투는 또 발생하는 일 없이 종결되었다" 라고 밝혔다.

 정권 내에서 새어나온 정보들이 아사드 대통령의 호화로운 삶과 이란인 조언자들에게 자문을 구하는 것 그리고 나날이 강도를 높여가는 구금 행위 등에 대한 그의 책임 등을 밝혀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제 사회의 입장은 정권 유력 인물들에 대한 제재 부과에만 국한되었고, 안보리는 "모든 세력들"에게 코피 아난 계획안의 데드라인에 따라 폭력 행위를 중단할 것을 다시 촉구하는 데 그쳤다. 이런 국제사회의 태도는 프랑스가 아사드 정권이 국제 사회를 속이고 있다고 비난하게 만들었다.

 4월 9일 데드라인 종료 몇 시간 전 시리아 정부는 반정부 측으로부터 정전에 관한 문서화된 보장이 없으면 군대를 도시 지역에서 철수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안보리는 만장일치로 코피 아난 계획안에 따른 비무장 군사감독단을 파견하기로 결의했으나, 시리아 인권네트워크에 따르면 정전 첫날에만 76건의 정전 위반 행위가 있었다.

 4월 아랍 국가들의 외무장관들은 카타르 도하에서 코피 아난 계획안을 지지하기 위한 회담을 열었으며, "시리아 국민들의 친구들"의 3번째 회의도 파리에서 열렸다. 이 회의 참석자들은 코피 아난 계획안이 실패할 경우 국제 헌장 7항에 의거한 제재를 시리아에 가할 것이라고 시리아를 위협했다. 그러나 정부는 군사 작전을 계속 진행했으며, 위성사진 조사결과 홈스 시의 54%가 파괴된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반정부측은 테러리스트들이 개입한 여러 차례의 폭탄 테러로 정부를 비난했다. 정치적 해결의 실패가 계속되는 이 시기 지하디스트 무장조직인 "자브하트 안 누스라" 가 결성, 시리아 내에서 무장 이슬람주의가 성장하기 시작했다.

 폭탄 테러 및 이에 관한 상호 비난이 오가는 가운데 폭력 수준은 계속 심해졌으며 5월 18일 코피 아난의 대변인은 다마스쿠스의 폭탄 테러의 배후에 알 카에다가 있다고 암시했다. 반정부 운동가들은 정권이 이 사건을 테러리스트들이 시리아에 있다고 주장하고이들립 및 다른 지역에서 군사 작전을 확대할 기회로 삼았다고 말했다.

 5월 20일 다마스쿠스의 반정부군 군사위원회는 정부가 시리아 사태 발생 이후 조직한 "시리아 위기대처 조직"의 고위 일원 6명을 법원 내의 폭탄테러를 통해 암살했음을 인정했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친정부 민병대인 "앗 샵비하"는 아이 32명을 포함한 114명의 민간인을 홈스 인근의 훌라 마을에서 살해했으며, 이로 인해 미국 UN 대사인 수잔 라이스는 안보리가 빠르게 어떤 조치에 대해 합의하지 않는다면 국제적인 승인을 받지 않은 군사 행동이 필요하게 될 수도 있다고 밝히게 되었다.

 시리아 사태가 보스니아 사태와 비슷하게 흘러가고 안보리가 동의한다면 어떠한 군사 행동도 나설 준비가 되어 있다고 미국이 밝힌 이후에도 시리아 정부는 다른 학살을 저질렀다. 하마 인근의 알 꾸바이르에서 여성과 아이들을 포함한 140명이 더 살해당했으며, 국제 감시단팀은 6월 16일 시리아 내에서의 감시 활동을 중지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안보리는 어떤 정치적, 군사적 해결 방안 없이 시리아 내의 인도적 상황에 대한 토론만 계속하고 있었다.

 
<자유 시리아군의 활동은 혁명의 행보 전환에 큰 영향을 끼쳤다>

 정치적 실패

 6월 말 자유 시리아군은 "알레포 해방전"을 선언, 전투를 대도시 중심부로 옮겨가겠다고 밝혔으며 7월에는 다마스쿠스의 국가안보부 건물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 국방장관인 다우드 라지하, 국방차관이자 아사드 대통령의 매형인 아세프 샤우카트, 국가안보부 부장인 히샴 바크티야르 등 정권의 주요 인사들이 사망했다. 또한 공화국 수비대 105여단 사령관인 마나프 틀라스 준장의 정권 이탈 이후 외교관 및 정치인들의 이탈도 이어졌다.

 그러나 안보리는 여전히 별 움직임을 하지 못했고, 러시아와 중국은 국제헌장 7항을 시행하는 결의안 통과를 세 번째로 거부권 행사를 통해 부결시켰다. 또한 아사드 정권은 아랍 외무장관들이 시리아에 제시한 "정권을 포기하는 대가로 아사드 대통령 및 가족들의 안전한 망명 보장" 제안을 비웃었다.

 8월 총리 리야드 헤잡이 정권 이탈을 선언했고, 라크다르 브라히미가 코피 아난의 뒤를 이어 새로운 특사로 임명되었다. 또한 시리아의 이슬람협력기구 회원 자격이 정지되었다. 그러나 아사드는 "시리아의 테러리스트들을 청소하고 일말의 놓침도 없이 테러와의 전쟁을 계속할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정부군이 다르야 지역을 자유 시리아군으로부터 탈환한 뒤 500명 이상의 민간인이 사망한 뒤 SNC는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위한 국제사회 개입을 반대하지 않았다. 이후 안보리는 "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에" 국제 감시단의 임무를 종료했으며, UN은 시리아에서의 전쟁 범죄를 조사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문제 해결이 복잡해지고 폭력 사태가 이어지는 가운데 미국은 9월 브라히미 특사의 활동을 돕기 위한 이집트 중재안을 위해 9월 카이로에서 개최된 아랍 국가들의 회담에 대해 회의감을 드러냈다. 시리아 정부의 화학무기 사용에 대한 의혹은 점점 커져가고 혁명군들은 전투를 계속하는 가운데 "혁명 군사 위원회 공동 지도부"의 결성을 선언했다.

 기구들과 승인

 시리아 사태가 국경 바깥으로 확산, 난민 문제, 레바논의 불안해진 치안 상황, 5만 명에 달하는 민간인 사망자 수 등으로 인해 반정부 세력은 11월 도하에서 열린 회담에서 기존의 시리아 국가위원회(SNC)를 확대하고자 했다. 회담 개최 몇 일 뒤 반정부 세력은 시리아 국가위원회를 포함한 "혁명과 저항군을 위한 시리아 전국연합(Syrian National Coalition for Revolutionary and Opposition Forces)" 결성을 선언하고 모아즈 알 카팁을 그 대표로 임명했다.

 이후 전국연합을 시리아 국민의 유일한 대표로 이어지는 국제 사회의 승인이 이어졌으며 과도 정부를 구성하고자 하는 반정부 측의 노력은 국제 사회의 지지를 받았다. 한편 브라히미 특사는 안보리를 통해 시리아에 "강력한" 평화유지군을 파견하고자 하는 노력을 계속했다. 

 군사적 상황 변화는 더욱 빨랐는데, 반정부군은 차례대로 알레포와 데레졸, 리프 디마슈끄 주의 공항과 주요 군기지들을 장악하기 시작했으며 탈취한 무기들로 거의 매일 정부군의 비행기를 격추할 수 있었다. 반정부군은 다마스쿠스 국제공항으로 향하는 고속도로를 차단하며 다마스쿠스 고원으로 다가갔고 동부의 알 구따 지역 및 남부의 여러 교외지역을 장악했다. 

 정치적 활동과 군사적 활동의 통합 움직임도 이루어져 자유 시리아군 및 군사 위원회의 지휘관들은 참여하지 않고 카타르, 터키, 미국, 프랑스 등의 대표들이 참여한 가운데 살림 이드리시 준장을 총지휘관으로 하는 반정부군을 지휘할 새로운 최고군사위원회가 설립되었다. 
 
 120개 이상의 국가가 모로코의 마라케쉬에서 열린 "시리아의 친구들 회의"에서 전국연합을 "시리아 국민의 유일한 대표"로 인정하고 유럽 외무 장관들의 정치적, 재정적, 인도적 지원 약속에도 불구하고, EU는 시리아 반정부 세력에 대한 무기 공급을 망설이고 있으며 미국은 반정부 지하디스트 무장조직인 "자브하트 안 누스라"를 해외 테러 단체 명단에 포함시켰다. 서구의 반정부 세력 및 무장 조직에 대한 신뢰의 어려움의 문제는 계속되고 있다.

 최근 정치적 조정 가능성에 대한 예측들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서구 언론들은 아사드 대통령이 라틴 아메리카로 망명하거나 군대를 대동하고 해안 지역에 틀어박혀 "알라위파 국가"를 세우는 것, 아랍 외무 장관들이 다시 한번 아사드 대통령에게 퇴임과 과도 정부 구성을 요구했다는 소식들을 전하고 있다. 그러나 이란은 올해 말까지도 여전히 아사드 대통령의 퇴임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으며, 러시아 역시 아사드 대통령의 퇴임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 않은 제네바 합의를 고수해야 한다는 입장을 지키고 있다. 러시아 대통령인 블라디미르 푸틴은 자신은 아사드 정권에 대해서가 아닌 시리아의 미래에 대해서 걱정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2012년의 끝이 다가옴에 따라 전국연합은 아사드 정권 퇴진 이후 평화유지군이 시리아 내에 주둔하는 것에 동의할 수도 있음을 밝혔다. 한편 반정부군들은 "하마 해방전"을 선언하며 전투를 계속하고 있으며, 반정부 운동가들은 정부가 주거지역에 백린탄 등을 사용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이들은 정부가 아끄랍 마을에서 학살 행위를 저질렀으며 이로 인해 알라위파 주민들을 포함한 125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혁명 및 그 여파는 시리아 난민들의 실제적인 위기의 이유이다>

 시리아인들, 특히 자유 시리아군이 점령한 지역 주민들은 어려운 삶을 살고 있다. 반정부군은 아사드 정권이 "해방된 지역"에 대한 식량, 연료 공급을 중단함으로써 압박하고, 폭격기 및 포병, 로켓포 등으로 계속해서 폭격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알 자지라 2012.12.31

 http://www.aljazeera.net/news/pages/fa08262c-73ba-41bb-92df-7eee115240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