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스트 아랍의 봄 특별 보고서 1 - 아랍의 봄은 실패했나? 중동/이슬람권



 아랍의 봄은 실패했나? 

 이코노미스트 2013. 7. 13

 혼란과 유혈사태, 퇴보에도 불구하고 이는 긴 과정이다. 희망을 버리지 말자

 아랍 세계의 혁명 이후 약 2년 반이 지난 지금 단 하나의 나라도 안정되고 평화적인 민주주의 국가가 되지 못했다. 가장 희망이 있던 튀니지, 리비아, 예멘은 지금 투쟁 중이며 혼란스런 민주주의 실험을 겪던 이집트는 대통령이 구금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시리아는 피의 내전을 겪는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사람들이 아랍의 봄이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중동은 변화할 준비가 되 어 있지 않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이 지역에 민주적 조직이 없어 혁명은 결국 무정부상태나 독재의 복귀로 이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또다른 이유는 이 지역의 유일한 응집력있는 힘이자 이 사람들 생각에 민주주의와는 맞지 않는 이슬람이다. 그들은 아랍의 봄이 없었다면 중동은 더 나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잘 봐줘도 섣부르고 나쁘게 보면 틀렸다. 민주적 변화는 때때로 폭력적이고 길다. 처음의 리비아 그리고 현재의 시리아처럼 아랍의 봄의 가장 최악의 결과는 끔찍하다. 그러나 이번 우리의 특별 보고서들은 대부분의 아랍 국가는 시계바늘을 되돌리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낙타 앞에 수레를 두기


 아랍의 봄이 실패했다는 사람들은 그 이전에 있던 긴 겨울과 사람들의 삶에 남긴 영향을 무시하고 있다. 1960년대 이집트와 남한의 기대수명과 1인당 GDP는 비슷했다. 오늘날 이 두 나라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 비록 많은 이집트인들이 도시에 살고 인구의 3/4는 글을 읽을 줄 알지만 1인당 GDP는 남한의 1/5에 불과하다. 빈곤과 영양 결핍으로 인한 발육 저하는 일반적인 일이다. 무슬림형제단의 신앙과 무능력한 정부는 이런 상황을 되돌리는데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집트의 더 핵심적인 문제는 그들 이전에 있던 독재자들에 의해 악화된 것이다. 다른 아랍 국가들도 상황은 낫지 않다.

 

 아랍의 봄의 불평등한 과정을 고려해보면 많은 사람들이 해답은 바로 권위주의적 근대화라고 하는 것도 일리는 있다. 리콴유나 덩샤오핑같은 인물들은 질서를 유지하면서 경제도 성장시켰다. 남아시아-동아시아 국가들과는 달리 아랍인들은 기꺼이 민주주의를 성장시키면서 경제도 번영시킨 “철학자 왕”같은 인물을 가지지 못했다. 대신에 독재자의 형제나 영부인의 사촌들이 모든 수익성이 좋은 사업체들을 독점했으며 민중이 들고 일어나는 것을 항상 두려워해온 독재자들은 보조금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개혁의 도전을 피하는 쪽에 기울었다. 이집트의 경우 GDP의 8%를 에너지 보조금에 쏟아붓고 있다. 


 부유한 걸프 석유 수출국들도 평화를 사고 있다. 그러나 교육받은 사람이 늘어나고 권리를 박탈당한 청년들이 자유를 갈망함에 따라 이런 옛날 방식은 점점 먹히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통치자들은 - 시리아의 경우처럼 - 권좌를 지키기 위해 얼마든지 피를 흘릴 준비가 되어 있다. 일부 앞서가는 왕국들 - 모로코, 요르단, 쿠웨이트 - 는 국민들에게 더 큰 발언권을 주는 입헌군주제의 방식으로 더듬더듬 나아가고 있다.


 “좋다. 그러나 아랍 민주주의는 그저 독재자보다 개혁할 능력도 없으면서 정치적 이슬람의 불관용성으로 인해 비민주적인 이슬람주의자에 의한 통치를 가져올 뿐이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번 달 초 무슬림형제단 출신 대통령으로 수백만 국민의 간청에 움직인 군부에 의해 축출된 무함마드 무르시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이었다. 그러나 그는 짧은 임기동안 민주주의의 규칙을 무시하는 데 전력을 기울이기만 했다. 많은 세속주의 아랍인들과 그들의 서구 친구들은 이슬람주의자들은 자신들의 통치가 신이 부여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감시나 독립적인 법원, 자유로운 언론, 귀속된 권력과 소수자를 보호하기 위한 다원적인 헌법과 같은 민주주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것도 역시 틀렸다. 아랍 세계 밖을 보면 인도네시아나 말레이시아의 이슬람주의자들은 그들이 민주주의의 습성을 배울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터키에서도 독재적이지만 민주적으로 선출된 레젭 타입 에르도안 총리에 대한 시위는 아랍의 봄보다는 브라질의 시위에 더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터키는 그 결점에도 불구하고 군부가 흑막에서 암약하던 때보다 더욱 민주적인 국가이다.


 문제는 아랍 이슬람주의자들에게 있다. 이것은 그리 놀랄 것도 아니다. 그들은 수십 년간의 억압 속에서 성장했으며 그들의 조직은 규합된 채 몰래 음모를 꾸미는 식으로밖에는 살아남을 수 없었다. 그들의 핵심 지지자들은 대부분의 아랍 국가에서 꽤 수를 차지하는 소수파이다. 그들은 무시될 수 없는 세력이며 주류 세력에 통합될 필요가 있다.


 이것이 이집트의 쿠데타가 비극인 이유이다. 무슬림형제단이 계속 권력을 유지했다만 그들은 이집트를 이끌어가기 위해 필요한 관용과 실용주의를 습득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민주주의 정치인들에 대한 그들의 의심이 옳다는것만을 확인했을 뿐이었다. 이제 일은 튀니지에게 달렸다. 독재자를 첫 번째로 몰아낸 튀니지는 아랍 이슬람주의자들도 꽤 잘 나라를 이끌어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튀니지는 적절하고 포괄적인 민주주의의 기반이 될 헌법 작성 과정에 있다. 만약 다른 아랍 국가들이 이 방향으로 움직인다면 이렇게 하기까지는 몇 년이 걸릴 것이다.


 이는 놀라운 것이 아니다. 정치적 변화는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지나고 나서 보면 역사의 혼란기가 별 거 아닌것 처럼 보이게 마련이다. 한 예로 공산주의로부터의 변화는 지금 되돌아보면 쉬워 보인다. 그러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3년이 지나자 마피아 범죄조직은 유럽으로 퍼져나가고 극단주의 정치인들이 폴란드, 슬로바키아와 발트 해 국가들에서 부상했다. 발칸 국가들은 전쟁으로 퇴보했으며 조지아에서도 전쟁이 벌어졌다. 오늘날에도 구소련 국가들의 국민들은 억압적인 정권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소련 시절로 되돌아가길 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흐름을 거스르지 않기


아랍의 봄은 “깨어남”으로 묘사되는 편이 더 나았다. 진짜 혁명은 거리에서 일어 난다기 보다는 오히려 정신에서 일어난다. 인터넷, 소셜 미디어, 위성 채널과 교육에 대한 갈망 - 남성만큼이나 여성들도 - 은 죽어가는 과거의 독재 정권과는 함께 살 수 없다. 특히 이집트인들은 민주주의는 단지 투표에 관한 것이나 또는 수백만 명을 거리로 이끌어내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배우고 있다. 민주주의에 도달하는 것은 항상 혼란스럽고 때때로는 피를 동반하기도 한다. 이 여정은 수십 년이 걸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환영해야 할 일이다. 



<물방울이 돌을 뚫듯이>

혁명의 가능성

얼마나 더 가야 하는가?


이코노미스트 2013.7.13


 변화는 더 멀어 보인다.


 2011년 1월 이집트 혁명이 있기 6개월 전 이코노미스트는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는 아랍 국가들의 기초가 흔들리고 있다고 말했다. 30년에 걸친 호스니 무바라크의 통치에도 이는 명백해 보였다. 이집트의 그 평온성은 임박한 붕괴를 가르키는 요소들을 인식하는 것을 쉽게 만들었다.


 이러한 급변기에 예측을 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지만 유럽 역사는 몇가지 교훈을 보여준다. 1848년 시칠리아 시민들이 폭군에 대해 들고 일어났을 때 시민들은 군대를 무찌르고 헌법과 의회를 획득했다. 이는 유럽 대륙 전체의 군주들을 뒤흔든 봉기의 시작이었다. 시칠리아 공화국은 단 16개월 지속되었으며 2년 내로 모든 다른 봉기들도 간단하게 분쇄되었다. 오직 덴마크에서만 혁명 세력은 성공을 거두었다. 국왕은 입헌군주제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1848년 시칠리아의 봉기>

 

 그러나 혁명의 불씨는 남아 있었다. 1848년 이후 한 세대 내로 유럽 전역이 근본적으로 변했다. 독일과 이탈리아와 같은 새 나라는 왕조가 아닌 민족에 따라 국경선이 결정되었다. 노예제와 농노제는 폐지되었다. 군주제는 자유주의적 민주주의 앞에서 후퇴했다.

한 세기 지난 뒤인 1968년 5월 파리에서 촉발된 청년들의 분노가 대중 시위의 물결로 이어졌다. 하지만 결국에는 소련 탱크가 체코슬로바키아로 진입한 것, 청바지와 록 뮤직 그리고 개인 자유의 개념의 확산을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어지는 몇 년 간 독재정부들이 무너졌다. 처음 1970년대에는 남유럽의 독재정부들이 그리고 1980년대에는 남아메리카의 독재자들이 그리고 약 10여년이 지나서 마침내 소비에트 연방이 무너졌다.


 아랍 세계도 마찬가지로 이전에 변화의 흐름을 겪었다. 이전의 변화는 1949년 3월 일련의 장교들이 시리아의 선출된 대통령이자 프랑스에 맞서 싸운 독립 영웅인 슈크리 쿠와틀리(Shukri Kouatly)를 몰아내는 쿠데타를 일으킴으로써 시작됐다. 1958년 이라크의 파이살 국왕 역시 살해당했으며 1962년에는 예멘의 이맘 무함마드 알 바드르(Imam Muhammad al-Badr)가, 1969년에는 리비아의 이드리스 왕이 쫓겨났다.


 1970년이 되면 이 변화의 흐름은 꽤 가라앉게 된다. 아랍 정치 지평은 다양한 왕국, 에미르 국가, 세속적 독재국가 및 군부 집권 공화정 등으로 정리된다. 일부는 가난했으며 일부는 부유했고 일부는 극단적으로 세속적이었으며 사우디아라비아와 같은 일부는 보수적이고 원리주의적이었다.


 유사점들을 포착하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19개의 아랍 국가들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대부분은 의회를 가지고 있지만 거의 모든 의회들은 거수기에 불과하다. 권력은 지배 가문이나 소수 씨족에 독점된 정당의 손에 있다. 1973년 석유 파동으로 인한 유가 상승으로 힘을 받은 국가는 마음대로 움직인다. 광신적인 프로파간다 및 교육, 문화부 장관들은 국가가 존경을 받을 수 있도록 만든다. 난폭한 경찰기구와 순종적인 사법부는 국가가 두려움의 대상이 되도록 만든다. 서로 서로를 감시하는 다양한 정보 기구들은 쿠데타를 막는다.


 충성심에 대한 대가로 자선을 베푸는 가부장적인 가정에 기반을 둔 국가 : 이는 지난 30년간의 아랍의 원리였다. 몇몇 통치자는 자비롭고 사랑을 받았으며 다른 통치자들은 타락하고 잔혹했다. 하지만 공통의 의례와 시금석 - 반식민주의 투쟁의 기억과 같은 - 들은 공유된 합법성을 유지하는데 일조했다. 매년 열리는 아랍정상회담에서 정상들은 아랍의 단결, 무슬림의 일치 그리고 신성한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 경의를 표한다.


 이 확대가족은 그러나 결코 행복한 가정은 아니다. 거의 백년에 달하는 팔레스타인 투쟁은 끊임없이 괴로운 상처가 되었다. 그러나 고통받은 피해자의 수로 본다면 아랍-이스라엘 분쟁은 아랍인들이 견뎌야 했던 가장 끔찍한 기억들에는 한참 모자라다. 수단, 알제리, 레바논, 이라크의 내전으로 인해 더 많은 사람들이 사망했으며 시리아 역시 그렇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집트는 1967년 6일 전쟁에서 시나이의 사막에서 잃었던 군인들보다 더 많은 수를 1960년대 사우디아라비아의 지원을 받는 왕정에 맞선 공화주의자들의 투쟁을 지원하면서 잃었다. 1980년대의 이란-이라크 전쟁으로 인해 약 50만, 아니면 거의 100만이 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누구도 정확한 희생자 수를 모른다.


 아이러니하게도 팔레스타인인들은 종종 아랍 내부 분쟁의 희생양이 되곤 했다. 1970년대 요르단은 팔레스타인들을 쫓아냈으며 레바논은 1980년대, 쿠웨이트와 사우디아라비아는 1990년대 그리고 이라크는 2003년 미국 점령 이후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추방했다. 오랜 기간 반 이스라엘 저항의 선봉이라고 주장해 온 아사드 정권의 시리아는 지금도 팔레스타인인들을 추격하기 바쁘다. 수만 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레바논 정부가 자산 소유를 허락하지 않기 때문에 미어터지는 레바논의 난민촌으로 피난을 떠났다.


 아랍 지도자들이 팔레스타인에 대한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의 중요성은 과장되어서는 안된다. 아랍 국가 중 3/4이 문제가 많은 유태인 국가와 국경을 접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이 실패는 더 큰 단점의 한 예일 뿐이다. 즉 아랍 정권들은 자신들의 정권을 유지하는 암암리의 거래를 지키는 데 실패했다.


 이는 항상 옳은 것은 아니었다. 1980년 중반까지 아랍 국가들의 경제는 세계 다른 지역만큼이나 성장했다. 생활 수준은 급격히 향상되었으며 기대 수명과 문자 해독율도 증가했다. 대부분이 유럽 제국주의의 잔재인 국경 내에서 국가를 건설하는 대가로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가치있는 것처럼 보였다.


 석유에 기반한 거래


 그러나 이런 성공은 취약한 토대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1970년대의 석유 가격의 급등은 석유 수출 국가가 국민들에게 거대한 사회기반시설 및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복지 혜택을 제공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석유 가격이 장기적인 침체에 빠지자 그들의 경제 역시 정체 상황에 놓였다. 알제리나 사우디아라비아의 청년들은 자신들이 부모보다 가난해 질 것이라는 것과 자신들의 힘으로 가정을 마련하는 것이 불가능해질 것이라는 걸 깨닫고 충격에 빠졌다. 1992년 알제리 내전의 전조가 되는 1988년의 알제리 청년 폭동은 아랍 세계 전역의 혼란의 전주곡이었다. 마찬가지로 1990년대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청년층의 이슬람 활동주의 바람이 불었고 이로 인한 충돌은 일부가 추방된 사우디아라비아 백만장자, 오사마 빈 라덴의 극단적인 지하드 설교에 빠지는 결과를 낳았다.

 

<두둥!>


 가난한 아랍 국가들도 상황은 낫지 않았다. 대부분의 아랍 공화국들은 중앙 계획, 국가 자본주의 및 수출 대체 등에 의존했다. 1980년대 아랍 공화국들의 경쟁력 떨어지는 산업과 굼뜬 관료제는 균열을 내기 시작했다. 늘어나는 아이들의 수를 맞추기 위해 공장같이 지어진 학교에서 형식적인 교육을 받은 시리아와 이집트의 중산층은 세계 다른 곳의 비슷한 계층에 비해 뒤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21세기에 들어서자 정부에 의해 고용된 아랍 노동자들의 수는 세계 평균의 2배에 달했으며 특히 산유국에서는 이 비율이 더 높았다. 게다가 아랍 청년 실업률은 세계 평균의 2배였다. 정부는 이전 세대의 온정주의의 산물이었던 식량과 연료 보조금을 지급하기 위해 기를 썼다. 각국 비밀경찰들은 보조금을 건드리게 되면 터져나올 폭동을 두려워해 이를 건드리지 말 것을 정부에 조언했다.


 이에 대한 응답으로 지도자들은 지금까지는 피해왔던 친기업적인 정책을 서둘러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석유 가격이 상승하고 있었기에 에너지 자원이 풍부한 국가들에게 이는 더욱 쉬운 결정이었다. 다른 아랍 국가들에게도 신자유주의 정책의 도입은 빠른 성장률이나 투자 증가 등의 이익을 가져왔다. 그러나 새로운 부는 집권 세력과 끈이 닿아있던 소수에게만 한정되었다. 뻐겨대는 지배 세력의 가문들과 그들의 하수인들은 가장 좋은 몫을 얻었다. 국민과의 이전의 오랜 거래는 점차 무시되었다.


 더 중요한 점은 국민들이 변했다는 것이다. 2010년 아랍인들의 약 2/3이 도시에 거주하고 있었다. 30세 미만의 사람들 중 3/4가 글을 읽을 줄 알았고 인터넷이나 위성 채널을 통해 바깥 세상과의 접촉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랍 인구의 40%가 하루 2.75달러 미만으로 생활을 꾸려가고 수입의 절반 이상을 식량 구입에 쏟으며 살아가고 있었다. 이는 언제라도 폭발할 수 있는 화약과 같았고 그 불꽃은 이미 타오르기 시작했다.

 

<아버지랑은 다를 줄 알았건만....>


 2000년 9월 시리아의 지식인 99명이 다마스쿠스에 모여 새 대통령인 바샤르 알 아사드에게 청원서를 제출했다. 이 시기는 희망의 시기였다. 지난 30년간의 시리아를 다스려 온 독재자 하페즈 알 아사드는 죽었다. 그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바샤르는 신사적인 이미지를 내세웠다. 청원자들은 공손하게 1963년부터 지속되던 비상조치법의 폐지, 정치적 반대자들에 대한 사면 그리고 집회와 표현의 자유를 요구했다.


 처음에 아사드 대통령은 귀를 기울이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정치범들을 석방시켰으며 추방자들을 귀국시켰다. 그러나 “다마스쿠스의 봄”은 곧 흐려지기 시작했다. 몇 년 지나지 않아 청원서에 서명한 사람들 거의가 감옥에 가거나 망명을 떠나야 했다. 비슷한 압력에 직면한 다른 아랍 지도자들과 같이 아사드는 이런 활동 세력의 수가 적으며 대중으로부터 제한된 지지를 받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는 일반 사람들이 이런 “문제꾼”들에 대해 걱정한다는 것을 파악했다는 점에선 옳았다. 그러나 이 활동가들의 생각과 그들의 희생이 영향을 남겼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아랍 정권들은 또한 새로운 방식의 저항감의 확산도 깨닫지 못했다. 이런 저항감 중 일부는 이스라엘 정복에 대항한 팔레스타인들의 봉기에서 자극을 받았다. 아사드 대통령 자신에 의해 촉발된 레바논에서의 저항이 그 한 예이다. 2005년 자동차 폭발로 유명한 정치인인 라피크 하리리(Rafik Hariri) 암살사건은 레바논 400만 국민 중 1/4이 거리로 쏟아져나와 평화 시위를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들 중 일부는 오랜 기간 레바논의 일에 개입해온 시리아가 그를 살해했다고 비난했다. 대대적인 시위로 인해 친시리아적인 레바논 정부가 물러나야 했으며 1975~1990년 레바논 내전기부터 레바논에 머무르던 시리아의 “평화유지군”이 철수해야 했다.


 아랍 세계 전역에 퍼진 불만을 품은 대중은 불 붙을 계기만을 기다렸고 이는 곧 머지 않아 다가왔다. 2010년 하반기 튀니지의 무함마드 부아지지의 분신 사건은 위성 TV, 인터넷과 카메라가 달린 핸드폰의 도움으로 아랍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마치 1848년 새로운 기술인 전보와 철도, 그림을 실은 일간신문이 시칠리아의 봉기를 유럽 전역으로 확산시켰듯이 말이다.


 아랍 혁명은 현재까지 5개의 정부 - 그 중 두 개가 이집트 -를 무너뜨렸으며 시리아와 바레인 두 개 정부를 심하게 뒤흔들었고 다른 정부들도 동요시켰다. 심지어 조용하고 번영하던 쿠웨이트와 오만에서도 개혁을 요구하는 시위가 일어났다. 그러나 이 시위들은 곧 추진력을 잃고 잠잠해졌다. 몇몇 정부들은 평화적인 수단을 통해 국민의 불만을 달래는데 성공했다. 모로코의 무함마드 6세 국왕은 왕권을 제한하는 헌법을 승인하고 중도적인 이슬람주의 총리를 임명함으로써 2011년 초의 아랍의 봄이 한창 거셀 때의 예기를 피할 수 있었다.


 알제리, 수단, 이라크와 요르단 정부들은 타협과 협박이라는 익히 사용된 방법에 의존했고 이는 현재까지 먹혀든 듯 보인다. 알제리, 수단, 이라크에서는 최근까지 있었던 자국 내의 내전의 기억이 국민으로 하여금 충돌을 피하게 만들었다. 요르단은 이웃 국가들의 비극을 항상 가장 가까이서 보아 왔던 나라였다. 이라크와 시리아 난민으로 휩쓸린 요르단 국민들은 비록 자신들이 변화를 원하지만 요르단이 요르단강 동안의 토착 주민들과 팔레스타인 난민 출신들로 그리고 이슬람주의자와 세속주의 비판자들로 분열되어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걸프 왕정 국가들은 다르게 대처했다. 베이루트의 아메리칸 대학교의 정치과학자인 힐랄 카샨(Hilal Khashan)의 말에 따르면 걸프 국가들은 적은 인구와 막대한 부에 힘입어 “정치로부터 휴일을 살 수 있었다.” 2011년 3월 사우디아라비아는 1200억 달러 규모의 사회 지출 증가를 선언했다. 주택 보조금, 장학금, 연금, 일시적 실업수당 등과 같은 조치는 비록 일시적이었지만 약 25%의 가정이 정부 지정 빈곤선 아래에 있는 이 나라에서 환영을 받았다.


 걸프협력기구의 6개 나라 중 단 한 곳도 정치 개혁이나 민주주의를 위한 진지한 움직임을 취하지 않았다. 그 대신에 걸프 국가들은 반대자들을 더욱 강하게 억누르고 비판자들을 투옥시키며 언론을 통제하고 대중 집회에 대한 더욱 엄격한 법을 제정했다. 걸프 정보부 장관들은 이집트와 튀니지의 상황이 재앙이고 시리아가 세기말적인 상황인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전력을 기울였다.


 역사를 되돌아 볼 때 아랍의 봄과 같은 흐름은 다시 돌이킬 수 없다. 베이루트의 카네기 센터의 소장인 폴 살렘(Paul Salem)은 아랍 지역이 이미 사상 체계에서의 변화를 겪었다고 본다. “정치적 의식에서의 광범위한 변화는 희생과 영웅심과 함께 사람들의 마음에 깊이 각인되었다. 누구도 아랍 대중이 원하는 것이 선거로 뽑힌 헌법에 기반을 둔 정부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지난 2년 간 1억 2400만 명의 튀니지, 이집트, 예멘, 리비아인들이 이 목표를 이루었다. 2005년 선거를 치룬 이라크까지 포함하면 3억 3800만, 즉 절반에 가까운 아랍인들이 오직 민주주의만이 정부에게 합법성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것이다. 


 변화의 기운


 이코노미스트 2013.7.13 

 

봄 기운은 변덕스럽다는 것이 드러났다. 그러나 아랍인들은 여전히 봄을 바라고 있다.


 

<상단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 튀니스의 하비브 부르기바 거리, 예멘의 사나, 
바레인 마나마의 진주 광장, 시리아 두마, 리비아의 바이다>


 2년 전 한 금요 예배 때 아랍 텔레비전은 아랍의 여러 도시들을 화면 분할을 통해 전달했다. 네 개의 시간대를 거쳐 정오 예배가 끝나고 모스크가 비기 시작하자 각 도시의 뉴스 팀들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모습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TV는 바레인의 수도 마나마의 진주 광장, 예멘의 사나의 타흐리르 광장, 이집트의 거대도시인 카이로, 리비아 벵가지의 해안가, 푸르른 튀니지에서 깃발을 흔드는 대규모의 시위대의 모습을 전했다. 시위대 거의 모두가 똑같은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국민은 정권의 퇴진을 원한다!”


 2011년 봄에는 마치 숨어 있는 지휘자가 시위에 대한 범 아랍적인 공감을 주도한것처럼 아랍 세계의 국민들이 하나같은 모습을 보였다. 2010년 12월 대대적 시위가 일어나기 전 3억 5천만 아랍인들은 전 세계에 영향을 끼친 “민주주의”에 대해 이상할 정도로 면역을 갖춘 것 같이 보였다. 공화국이든 왕정 국가든 19개의 아랍어 화자가 다수인 국가 거의 모두가 비슷한 정치 체제, 즉 취약한 헌법이라는 위장이 독재자의 통치를 가리는 형태를 지니고 있었다. 일자리가 없는 청년들을 포함한 국민들은 앞으로 조국이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 지에 대한 의견 표현을 거의 하지 않았다.

 

<아랍의 봄 F4>


 놀라울 정도로 짧은 시간 내에 수십 년간 지속된 튀니지, 이집트, 리비아, 예멘의 독재 정권들이 무너졌다. 국민의 압력이 거세짐에 따라 아랍 정부들은 정치 개혁과 국민의 불만을 달래기 위한 양보 및 공공 지출을 늘렸다. 서구인들에게 1960년대의 사회 운동을 떠올리게 한 아랍 전지역적인 청년층의 에너지 분출은 새로운 힘이 등장했음을 보여주었다. 전세계적으로 공유되는 정치 개념으로의 발전에 대한 아랍의 신가부장적인 국가들의 명백한 무능력이라는 “아랍의 예외”는 끝난 것처럼 보였다.


 이 격렬하고 희망찬 날들은 예전에 지나가버렸다. 이제 아랍 전역의 분위기는 어둡다. 아랍의 봄이 이슬람주의자의 겨울로 바뀌었다고 씁쓸하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강력한 종교적 신조를 지니고 있으며 아랍의 봄 이후 대부분의 국가에서 정권을 잡은 무슬림형제단 및 다른 이슬람주의 조직들이 이집트에서의 권력 상실 이후 더욱 전투적으로 변하지는 않을지를 두려워한다. 많은 사람들은 이슬람주의자들이 30년 전 이란의 혁명의 길을 따르고자 하며 이들에게 있어 민주주의는 새로운 권위주의 정부를 합법화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한 사람에게 한 표, 딱 한 번만.”


 

<아랍의 봄, 그 연표>


 그러나 이슬람주의자들도 현재까지의 변화 상황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다. 수십 년간 반대 세력으로 지내다 권력을 잡은 그들은 어려운 교훈을 배우고 있다. 이슬람주의자들 스스로가 종교적 신조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합의가 없는 상황, 그리고 견고하게 뿌리박은 관료제나 세속주의적 엘리트 세력의 이슬람주의자에 대한 반대가 점점 더 완고해지는 가운데 종교적 신조를 실제적인 정치로의 전환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할지라도 국민적 저항과 군부의 조합에 의한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의 축출은 충격이었다.


 다른 비평가들은 이슬람주의의 의도나 정치적 분열보다는 첫 단계에서의 저항을 이끌어낸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아무 것도 하지 못한 과도적 단계를 장기화시키는 혼란 상황에 대해 더욱 우려한다. 투표권과 표현의 자유가 더 나은 정부, 즉 더 많은 일자리와 가시적으로 보이는 밝은 전망으로 바뀐 지역은 단 한 곳도 없다. 어떤 국가도 다른 나라에게 앞으로의 적절한 예시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절망이 희망을 압도하는 것처럼 보인다. 튀니지나 이집트는 앞으로 누가 정권을 잡든 간에 한동안은 혼란 상태를 거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새로이 선출된 민주 국가들은 꽤 잘해온 편이다. 다른 지역의 경우 2011년 봄은 자유가 아닌 더 심한 폭정과 국내 분쟁으로 이어졌다. 바레인 경찰이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위대를 분쇄하는데 실패하자 정부는 이웃 순니파 왕정 국가들의 군대를 요청했고 결국 수백명이 사망하거나 체포되었다. 바레인의 결과는 이 나라 국민의 2/3를 차지하는 분노한 다수 쉬아파와 이들을 두려워하는 집권 순니 왕정 세력 사이의 우울한 교착 상태이다. 바레인은 나아가길 실패한 것만이 아니라 1980년대 종파 갈등이 극심하던 때로 다시 돌아가 버렸다.

 

<무엇이 바뀌었나>


 시리아의 상황은 더욱 혼란스럽다. 현재 시리아는 2년 전 대담하게 정부에 들고 일어난 평화적인 시위대가 예상했던 최악의 상황보다 더욱 심각하다. 사망자는 10만 명을 넘었으며 시리아 2,100만 국민 중 1/4 이상이 집을 잃었다. 주요 도시 중 절반 이상이 폐허가 되었으며 UN에 따르면 국민 중 절반이 올해 말이 되면 식량 원조가 필요해질 상황에 내몰릴 것이다. 전국적인 국민 저항으로 시작된 것이 이제는 끝이 보이지 않는 내전으로 발전했다. 현재 예측할 수 있는 유일한 결론은 암울하기 짝이 없다.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이 승리한다면 물질적으로는 황폐화되고 정신적으로는 심각한 상처가 남으며 정치적으로 분열된 시리아 땅에 잔혹한 독재가 이어질 것이다. 반정부 측의 승리는 인구의 70%에 달하는 순니파를 억압해 온 시리아의 다양한 소수 종파에 대한 끔찍한 복수전을 낳을 것이다. 현재의 교착 상태가 지속된다면 시리아는 서로 적대하는 지역으로 분리되어 현재의 분쟁은 마치 이웃의 레바논이 15년간 그랬던 것처럼 내전으로 자라날 것이다.


 더 암울한 결과도 있다. 시리아 문제는 이미 국경을 넘었다. 약 200만의 난민들이 이웃 나라에 머물고 있다. 문제는 또한 다른 방향으로도 이어진다. 시리아로 흘러들어가는 인력, 자금 및 물자는 현 사태를 아사드 대통령의 동맹인 이란, 이라크, 러시아 및 헤즈볼라와 반정부측을 지원하는 아랍 및 서구의 대리전으로 만들었다. 또한 반정부측에 속해 있는 알 카에다와 같은 극단 지하디스트 세력은 엄격한 종교법을 적용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그들의 편협한 이슬람 해석에 맞지 않는 시리아 및 전 지역을 “정화”하고 싶어한다.


 분쟁의 확대는 시리아의 취약한 국경에서 기인한다. 현지의 감정은 별로 고려하지 않고 유럽 세력에 의해 약 100년 전 그어진 “사막 위의 선”은 후대에 피로 다시 그려질 것이다. 벌써 시리아 북동부의 쿠르드인들은 자치령 비슷한 것을 형성하여 이웃 이라크나 터키의 쿠르드인과 현재로써는 취약하지만 관계를 맺고 있다. 또한 시리아의 순니파와 쉬아파의 공개적인 적대감은 이라크, 레바논 및 멀리는 예멘까지 종파적 분쟁에 다시 불을 붙였으며 이로 인해 쉬아파의 중심세력인 이란과 터키, 사우디아라비아와 같은 대형 순니파 국가간의 직접 충돌의 가능성이 열리게 되었다. 이슬람의 두 주요 종파 간의 피트나(fitan, 불화)는 다시 한번 불안하게 요동치고 있다. 아랍의 속담엔 이런 말이 있다. “피트나가 잠자고 있을 때 그것을 깨우는 자에겐 신의 저주가 있다.”

 

<아랍 세계의 인구 및 GDP>


시작의 끝


 시리아의 비극 그리고 다른 지역에서의 과도기로 인해 일어난 문제들은 다른 역효과를 낳고 있다. 지금까지 개혁을 거부해온 정권들은 이런 문제들을 빌미삼아 옛 방식을 고수하는 변명으로 삼고 있다. 특히 걸프의 석유가 풍부한 왕국들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을 더욱 강화했다. 걸프 왕국들의 주민 대부분은 비교적 만족하고 있으며 불만의 목소리는 크지 않다. 그러나 그 고요한 수면 아래 불안이 감돌고 있다.


 요약하자면 현재까지 아랍의 봄의 점수표는 전체적으로 부정적이다. 그러나 이번 이코노미스트의 아랍의 봄 특별판은 그런 평가를 내리기에는 시기상조라고 주장한다. 아랍의 봄은 암울한 결말에 다다랐다기 보다는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세계 다른 지역의 경험으로 미루어보건대 이러한 변화는 몇 달이 아닌 몇 년, 때로는 몇 십 년이 걸린다.


 불안과 심지어는 유혈 사태는 지속될 것이다. 그러나 이는 정치 발전이 당황스러울 정도로 급격한 인구 증가, 도시화와 같은 사회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곳에서라면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정부와 종교, 중앙정부와 지방 그리고 개인과 집단의 권리의 관계에 관한 논쟁은 언제까지나 묻어둘 수 없다. 


 

 이집트의 두 번째 봄 이후


 민주주의를 향한 아랍 세계의 길은 항상 힘들었다.


 만약 당신이 이집트 대통령이라면 수백만 명의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당신보고 물러나라고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작년 선거 운동 기간 동안 무함마드 무르시는 자신이 정당하게 국민의 의지를 대변할 것이므로 시위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그리고 그는 확고하게 덧붙였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저는 제일 먼저 사임할 것입니다.”


 이집트 역사상 처음으로 자유로운 선거에서 당선된 대통령은 약 천만 가까운 국민들이 그의 사퇴를 요구하며 거리로 쏟아져 나와도 사임하지 않았다. 30개월 전 그의 전임자인 호스니 무바라크 때와 같이 결국 군부가 그를 몰아냈다. 마치 아랍의 봄이 일어나지 않은 것만 같았다. 새로운 세대의 첫 지도자나 장군들이나 이전 독재자들과 똑같은 행동을 했다.


 이는 전혀 진보처럼 보이지 않는다. 최근의 무르시의 축출은 이전의 늙은 폭군을 몰아낸 것에 비해 훨씬 나쁜 전조처럼 보인다. 또한 오랜 기다림 끝에 겨우 권력을 잡은 무슬림형제단은 다른 국가의 야심찬 이슬람주의자들에게도 위험 신호를 주고 있다.


 그러나 이집트 혁명의 반복은 다른 지역에서의 혁명 이후 상황이 보여주듯이 사실 전혀 놀라울 것이 아니다. 프랑스 혁명은 나폴레옹의 등장까지 10년간의 혼란기를 겪었으며 안정적인 민주정부로 이어지기까지 70년이 걸렸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의 반향은 5년을 이어졌으며 이란 혁명의 경우는 1979년 이후 3년 이상 지속되었다.


 만약 이집트인들이 두 번째 혁명을 일으켰다면 이는 무르시 대통령이 무바라크와 같은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무르시는 무바라크와 똑같이 가부장적이고 보스다운 통치를 하려고 했지만 무바라크보다 서툴렀다. 무슬림형제단은 과거의 유물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형제단은 이슬람주의자들의 이상이 사람들을 고양시킬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대부분 이집트 국민들의 야망은 형제단이 바랐던 것과는 크게 다르다는 점 역시 드러났다.


 그러나 혼란을 해결하기 위해 군부가 다시 개입해야만 했다는 것은 이집트에게 있어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무바라크 사퇴 이후 무르시 집권까지의 과도 기간 동안 군부 통치는 무능력했고 잔혹했다. 그러나 다른 아랍 국가들은 이집트가 적어도 애국심 있고 전문적인 군대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부러워하고 있다. 아무튼 간에 이집트군은 시리아의 깡패 같은 군대보다야 낫다.


 이집트 장군들 역시 아랍의 봄으로부터 뼈아픈 교훈을 배웠으며 재빨리 민간 지도자 및 민간 기구 뒤로 숨었다. 이 민간 기구들은 대부분이 제대로 활동하고 있지 못하며 이들에게는 산적한 문제가 있다. 여기에 새로운 문제가 하나 추가되었다. - 열받은 이슬람주의자들의 폭력적인 반향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 그러나 이미 맛본 자유를 위해 싸울 준비가 되어 있는 평범한 이집트인들의 회복성과 창의력은 아랍 전역에 자극을 주었다.


 민주주의로의 길은 직선이 아니다. 변화가 시작한 곳에서 정치 경험은 마치 열린 경쟁과 같으며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경계선은 이제 새로 만들어졌거나 아니면 아직 만들어지지도 않았다. 독재자의 통치 회귀로의 위험은 여전히 높다. 알제리나 사우디아라비아 같이 적절한 대중 참여로의 움직임이 오랫동안 동결되어 있던 지역에서는 하나의 급격한 해동이 눈사태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라크의 사회학자인 팔레흐 압둘 잡바르(Faleh Abdul Jabbar)는 대부분의 아랍 국가에 대해 “이론적으로 민주주의에 필요한 모든 요소는 없으며 반대로 민주주의를 막는 모든 요소는 존재한다.” 라고 경고했다. 중산층은 취약하고 분파주의는 만연해 있으며 자원이 풍부한 나라들은 세금도 내지 않는 국민들의 동의를 구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평형 상태는 변화하고 있지만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강해지는 희망


 이 모든 위험에도 불구하고 아랍의 봄의 정신은 살아 있다. 정도는 다를지언정 모든 지역에서 두려움의 벽은 무너졌다. 시리아의 극작가인 사둘라 완누스(Saadullah Wannous)는 한 세대 전에 자신의 민족에 대해 “희망을 가지도록 선고된 자들”이라고 비탄했다. 그러나 이 희망은 이제 강해졌으며 그 형벌은 가벼워보인다. 최근 카타르의 아랍 정책연구소(Arab Center for Research and Policy Studies)가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부분의 아랍인들이 혁명을 전체적으로 긍정적으로 보고 있으며 언젠가는 목표가 이루어질 것이고 민주주의가 가장 뛰어난 정부 형태라고 생각하고 있다.


 아마도 더욱 놀라운 것은 응답자 대부분이 자신들이 종교적이라고 답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랍인들 절대 다수가 정부가 국민의 지지를 얻기 위해 종교를 이용해서는 안된다고 답했다는 점이다. 그들은 누구도 다른 신앙을 가지고 있다거나 이슬람을 다르게 해석한다고 처벌할 권한은 없다고 생각한다. 무르시 대통령은 이 점을 이해하지 못했고 그래서 그 대가를 치렀다. 

 

 그리고 개인적 사족


 이코노미스트의 기사 4개를 모아놓은 거라 좀...깁니다. 


 하지만 전체적인 메세지는 비슷합니다. 비록 지금은 전혀 나아진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민주주의, 정치 변화의 단계는 오랜 시간이 걸리며 아랍 세계는 이제야 변화를 위한 첫 발을 내딛었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 주장에 저도 개인적으로 동의하는 편입니다. 


 이집트의 두 번째 쿠데타나 아랍의 봄 이후 이슬람주의 세력의 급부상을 보며 많이 나온 의견들로는 "아랍/이슬람 세계는 민주주의와 맞지 않는다" "괜히 세속주의 정권(=독재 정권)이 무너져서 이슬람만 강조되고 소수자 피해보고 있는거 아니냐 이게 무슨 변화냐" 등등..이 있지요. 


 하지만 다들 아시다시피 민주주의란게 투표해서 국회의원이나 대통령 뽑기만해서 자동적으로 완성이 되는건 아닙니다. 정치적 변화는 사회적, 경제적 변화와 발을 맞추어야 하고 발전 과정에서도 수많은 반동이나 퇴보가 있지요. 게다가 아랍 세계에서 민주주의를 위한 기반은 2011년 당시 사실상 백지상태였습니다. 독재 정부는 수십 년간 자유주의나 세속주의 성향의 야권이 성장하는 것을 결사저지했고 더 넓은 국민의 정치참여 및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수단을 막고 국가의 부를 소수 집단끼리 나눠먹었죠. 아랍의 봄 이후에야 이런 산적한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겨우 "시작" 했을 뿐이었습니다. 


 

 1960년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국민이 대통령을 몰아낸 4.19 혁명 이후 어느 정도 민주주의 국가의 반열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는 30년에 가까운 시간이 걸리지 않았던가요?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식민지 국가 중 민주주의를 빠르고 그리고 훌륭하게 이루어 낸 극소수의 국가로 평가받고 있지요. 

 민주주의를 어느 정도까지 이루어 내는 데에도 30년 걸리면 빠르게 해낸 것이라고 평가하는 마당에 이제 겨우 2년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아랍의 봄은 실패했고 이슬람이 민주주의와 맞지 않으며 아랍 세계는 민주주의의 역량이 없다 라고 결론 내리기에는 지나치게 섣부른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아랍의 봄은 끝이 아니라 그저 시작일 뿐이었지요. 저는 시작 단계에서 왜 결론을 벌써 내려야 하는지를 잘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덧글

  • 킹오파 2013/08/01 16:23 #

    사람들이 그렇게 분석을 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슬람교는 정교 분리와는 거리가 먼 종교이니깐요.

    불교에서 가장 존경받는 붓다는 왕자 자리를 걷어차고 부처가 되었고 기독교는 가장 존경 받는 예수가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라고 할 정도로 정교 분리주의자였죠.

    이슬람 주의자들은 그들의 지도자 마호메트의 전례를 들어 끊임없이 세속화와 민주주의를 거부할것입니다.
    당연히 한국과는 사정이 다르죠.

    울 나라가 민주주의를 하는데 모두가 합심했지만 이슬람 주의자는 과연 그럴까? 끊임없이 거부하고 투쟁할텐데요.
  • jeltz 2013/08/01 16:23 #

    이슬람교는 정교 분리와 거리가 먼 종교일지는 몰라도 - 개인적으로는 진짜 이슬람교 내에서 확고하게 종교와 정치가 결합되어 있는지는 좀 의문입니다만 - 그 신도들은 민주주의가 얼마든지 대안이 될 수 있으며 민주국가의 무슬림 시민으로 사는 것이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지요.

    결국에 종교는 신도들이 해석하고 시대에 따라 변합니다. 그리스도가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라고 했더라도 로마 교황청이 실제적으로 수백년간 권력을 지녔고 무함마드가 메디나 공동체를 이끌었더라도 1,400년 이슬람 역사상 실제로 종교지도자와 정치지도자가 같았던 적은 드물었듯이 말이지요.
  • 킹오파 2013/08/01 16:24 #

    생각해 봅시다. 정교 분리를 기지로 내밀었던 불교권이나 기독교권 모두 해당 종교가 정교일치 국가를 수백년 이상 유지했습니다. 그렇다면 정교 일치를 주장하는 이슬람이야 말로 불교권이나 기독교권보다 훨씬 더 시간이 걸릴거라는건 누구나 생각할수가 있죠.
  • jeltz 2013/08/01 16:24 #

    터키의 이슬람주의 정당 AKP는 정권 잡은지 10년임에도 불구하고 엄연히 민주국가의 정당으로 대접받고 있지요. 이번에 새로 튀니지의 정권을 잡은 이슬람주의 정당인 나흐다 역시 샤리아 도입이니 무함마드의 전례하고는 전혀 거리가 먼 모습을 보여주고 있구요.

    이슬람주의자들이 진짜 마호메트의 전례를 들어 민주주의를 거부하고 있을까요?
  • jeltz 2013/08/01 16:27 #

    이슬람은 하나의 고정된 실체가 아닙니다. 게다가 세계의 다른 부분은 21세기에 있지만 이슬람 세계만이 7세기에 있는 것도 아니고, 옛날처럼 낙타타고 오가던 시절도 아닌 티비와 인터넷만 켜면 다른 세계의 모습을 낱낱이 볼 수 있는 오늘날 발전 과정이 옛날과 똑같으리라는건 잘 모르겠는데요.
  • 킹오파 2013/08/01 16:36 #

    터키처럼 세속화를 강제하더라도 격세 유전과 같이 근대성에 반발하는 움직임이 계속 생길겁니다.

    왜냐하면 이슬람 교도들의 모범인 마호메트가 예수나 부처와 달리, 정교일치였기 때문입니다.

    이슬람 주의자들은 언제든 코란에서 그 전례를 쉽게 끌어올 수 있습니다. 타 종교는 정교일치의 근거를 찾기 힘들기 때문에(구약 성경 정도가 제외) 정교 분리가 되기 쉽고 개개인의 사적인 구원 같은 거에 더더욱 큰 가치를 두었다면 이슬람은 다릅니다.

    이슬람은 경전을 펴기만 하면 신정을 뒷받침하는 내용을 어디서든 찾을 수 있습니다. 이슬람 주의자 입장에서는 코란만큼 든든한게 없지요. 한마디로 비이슬람 세계와 이슬람 세계는 다를수 밖에 없죠.

    정교 일치의 근거를 찾기 힘든 곳과 정교 일치의 근거를 어디서든 쉽게 찾을수 있는 곳이 저항강도가 같을리가 있나요? 말이 안되죠. 이슬람과 비이슬람의 차이는 하늘과 땅입니다.

    비이슬람 세계인 한국의 사례를 들어 이슬람 국가를 평가한다는게 오히려 저는 이상하게 느껴질 뿐입니다.
  • jeltz 2013/08/01 16:35 #

    킹오파님이 말씀하시는 "이슬람주의자"들은 제가 모르는 다른 차원 우주 세계의 이슬람주의자들같네요. 아니면 형제단이나 나흐다, AKP와는 다른 "살라피스트" 세력을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만. 무엇보다도 "이러이러했다"가 아닌 "이러이러 할 것이다"라는 예측을 하고 계시는데 그 근거가 달랑 무함마드가 그랬기 때문이다. 이뿐이군요.

    물론 이슬람교에서 무함마드의 순나가 차지하는 중요성은 큽니다만은, 이슬람교 교리 해석에 있어서는 그 순나를 어떻게 "해석"하느냐 역시 매우 중요성을 차지합니다. 그리고 AKP나 나흐다의 사례에서도 보이듯이 이슬람주의자들도 무함마드의 전례를 어떻게 해석하고 현 사회에 적용할 것인지는 다 달라요. AKP가 10년 집권했는데 지금 터키 사회가 사우디화되고 있습니까?

    덤으로 사실 코란에는 정교일치 관련 내용이 거의 없습니다. 이슬람법 샤리아 체계가 왜 그리 복잡하고 학파마다 다른데요. 코란 자체가 많은 부분에 대해 굉장히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어투로 쓰여있거든요.
  • 킹오파 2013/08/01 16:38 #

    AKP가 보수화하려고 시도하다가 지금 시위 맞는 거지요. 그건 격세유전이 아니면 모죠?
  • jeltz 2013/08/01 16:40 #

    바로 이 본문이 비판하는 내용이 그 "무슬림의 특수성"에 관한 것입니다. "이슬람은 정교일치적이기에 절대 민주화가 될 수 없다" 란 주장 말이죠. 아무리 터키나 튀니지, 인도네시아처럼 민주주의를 향해 변화해가고 있고 또 실제적으로 변화한 나라의 예들 - 이코노미스트 기사가 주로 예시로 드는 국가들이죠 - 들어도 이 무슬림의 특수성에서의 이슬람교는 마치 알 카에다나 탈레반의 이슬람교처럼 나무토막마냥 경직되어 있습니다.

    정작 이슬람 세계권에서의 정치 이론은 그 경직성을 배척하고자 하는데 말이지요.
  • jeltz 2013/08/01 16:41 #

    도심지의 공원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쇼핑몰을 짓겠다는 정책이 그렇게 이슬람적인 정책인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 jeltz 2013/08/01 17:07 #

    AKP의 그 "보수화" 정책이란게 뭡니까? 터키 헌법을 샤리아로 바꾸려고 했나요? 후두드 형벌을 도입했습니까? 비무슬림에게는 투표권과 시민권을 박탈했나요? 아르메니아 기독교도들에게 지즈야를 부과하기로 했습니까? 여성에게 히잡 착용을 강제했나요? 여성들의 근로권을 억압하려고 하나요? 기존의 가족법을 샤리아로 대체하려고 하나요?

    물론 현 터키가 어디 스웨덴이나 또는 우리나라 정도의 민주주의 국가라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퍽하면 군부가 개입해서 정권 뒤엎고 총리가 사형당하거나 정치적 반대파는 쥐도새도 모르게 끌려가서 사라지거나 쿠르드인이나 알라비교도라고 집회 장소에 폭탄이 터지고 쿠르드어를 사용하지도 못하는 몇 십 년 전에 비하면 민주적으로 발전했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발전 추세는 AKP 집권 이후에도 뚜렷한 반동을 보였다고 하기에도 어렵구요.
  • 킹오파 2013/08/01 16:43 #

    물론 당연히 교육이 점점 발달하면 이슬람 세계도 타 세계와 비슷해 질수는 있습니다. 출산율이 떨어지고 있다는게 그 증거죠.

    다만 저항강도는 타 세계하고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오랜 시간과 희생이 걸릴 겁니다.

    정교 분리를 바탕으로 한 종교도 수백년 이상 지배했는데 정교 일치였던 종교라면 훨씬 더 오래 걸릴게 바로 보이죠. 그렇기 때문에 한국이 30년이 걸렸다면 이슬람 세계는 최소 100년 이상은 걸리겠죠.

    물론 이슬람 세계가 얼마나 교육에 투자를 하느냐에 따라 그 시간은 한국과 비슷해 질지 아님 제 예상대로 최소 100년 이상은 걸릴지 두고 볼 일입니다.
  • jeltz 2013/08/01 16:48 #

    물론 사회 변화의 추동력에 있어서 교육의 중요성은 중요합니다만, 사회 변화에 있어서 "종교"의 영향력을 굉장히 과대평가하고 계신것 같습니다만.

    남미나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동남아의 독재 정권이나 민주주의의 취약한 발전에 대해 가톨릭교나 힌두교, 불교나 토착 종교에 요인을 돌리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는것같은데 중동권에서는 항상 이슬람이 모든 원흉으로 간주되죠.

    진짜일까요? 물론 모든 잘못을 이슬람으로 돌려버리면 간단하긴 합니다.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어지긴 하죠.
  • 킹오파 2013/08/01 16:55 #

    이슬람 국가들의 공통점은 모두 1. 여성 차별 2. 인권 의식 부재 3. 민주주의 부재 4. 가난이 공통적이죠.

    불교나 기독교권 국가들은 선진국이 끼어있기 때문에 종교 탓 못합니다. 자신들의 무능력입니다.
    근데 이슬람 국가중에 단 한곳도 선진국이 있나요? 여성 인권이나 민주주의가 크게 발달해 있나요?
    그게 아니니 문제죠.
  • jeltz 2013/08/01 16:57 #

    이슬람국가도 자신들이 무능해서 그런건데요.

    캄보디아가 못사는 것은 자신들이 무능해서 그런건데, 이라크가 못사는건 이슬람교 때문입니까? 캄보디아나 짐바브웨의 후진성은 국가 능력에 기인한건데 이라크나 예멘의 후진성은 이슬람교로 돌리는 이유는 "같은 종교 믿는 나라 중 선진국이 있냐 없냐?" 라니..... 아 이 통찰력있는 의견에 그저 무릎을 꿇고 예를 표할 수 밖에 없네요.

    보면 볼수록 감탄나고 경탄이 나는 주장입니다..오호...
  • 킹오파 2013/08/01 17:07 #

    이슬람 국가가 얼마 안된다면 님의 말이 옳겠죠. 근데 무려 57개국이 이슬람 국가 연합에 있습니다. 인구는 엄청나고요. 그 57개국이 하나같이 죄다 다 무능해서 전부 가난하고 여성 억압이고 민주주의 없고 인권 부족하고... 이게 말이나 됩니까?
  • jeltz 2013/08/01 17:10 #

    57개국 중 한 손으로 꼽을 수 있는 국가를 제외하고는 다 독재/왕정 국가였으니까요. 게다가 이들 지역의 독재자들은 앞에서 말씀드렸다시피 제대로된 경제 구조도 갖추는데 실패했구요.

    오랜 독재로 인한 억압이 민주주의 발전, 인권 신장을 저해하는건 제가 보기엔 너무나 당연해보이는데요.

  • jeltz 2013/08/01 17:18 #

    반세기 이어지는 독재, 경제 발전 실패가 전 세계 200여개 국가 중 오직 57개 OIC 국가에서만 나타났다면 진짜 이슬람의 영향에 대해 생각해봐야 하겠습니다.

    근데 그러던가요? 시리아나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의 독재와 인권억압의 이유와 캄보디아, 라오스, 북한 등의 독재, 인권억압의 이유가 완전히 다르다고 볼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이죠? 왜 뒤의 세 국가는 경제구조나 식민지배, 정치발전 등에서 그 문제의 이유를 찾는 반면 뒤의 세 국가의 문제는 그냥 이슬람이 그렇기 때문이다라는 결론이 필연적으로 나와야 합니까?

    물론 종교가 사회 및 정치발전에 미치는 영향을 무시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슬람도 한 요인이다" 와 "이슬람이 모든 문제의 요인이다"는 말씀하신 비유처럼 하늘과 땅만큼 다르지요.

    PS : "이슬람이 모든 문제의 요인이다"에서 한 단어만 바꾸면 무슬림형제단의 구호가 되네요. "이슬람이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다"
  • 킹오파 2013/08/01 16:51 #

    최근 집권당은 오후 10시~오전 6시 소매점 주류 판매를 금지하고, 보스포러스 해협에 건설한 대교에 오스만 제국 시대의 술탄(군주) 이름을 따라 짓는 등 이슬람 색깔을 강화했죠.

    그리고 그 공원의 역사적 의의를 모르시나 본데 오스만 제국이 끝나고 1923년 터키공화국 시대가 열릴 때 탁심 광장은 세속주의 사고가 발현된 장소인데 거기다 쇼핑몰 외 이슬람 사원을 떡하니 짓겠다는게 세속주의자 입장에서는 시위할일 아닙니까?
  • jeltz 2013/08/01 16:54 #

    소매점 주류 판매는 결국 반대에 부딪혀서 결국 사실상 침몰해버렸습니다.

    다리에 오스만 제국 군주 이름을 짓는게 이슬람화인가요? 이스탄불이나 터키 다른 지역에도 술탄 파티흐니 등의 지역명은 공화인민당 시절부터 있었어요. 파티흐 대교가 이슬람화의 상징이면 서울시의 세종로는 왕정복고주의의 상징입니까?

    이슬람 사원? 그거 밀고 짓겠다는 건 쇼핑센터/오스만 제국 요새 복원이었는데요. 탁심 광장 자리는 원래 오스만 제국의 성채가 있던 자리였거든요.
  • 킹오파 2013/08/01 16:58 #

    터키는 국부인 케말파샤가 오스만 왕정을 폐지하고 세속화를 부르짖으며 현재의 터키를 만들었죠. 오스만 왕조가 과거의 터키라면 현재의 터키는 케말파샤가 만든 것입니다. 터키가 이슬람 국가중에서 그나마 가장 선진화 된것도 그 덕분이죠. 세속주의자와 젊은 세대 입장에서는 그런 곳에다 뜬금없이 그런걸 짓겠다면 누가 좋게 평가할까요?
  • jeltz 2013/08/01 17:02 #

    아 그나저나 탁심 광장과 탁심 게지 공원을 헷갈리시는 것 같은데 AKP 정부가 밀겠다는건 탁심 광장이 아닙니다. 밀겠다는건 탁심 광장 근처의 게지 공원이라는 공원이고 이건 세속주의랑은 아--------무 상관도 없는건데요. 아타튀르크의 도시개발계획에 의거해 원래 있던 성채를 밀고 그 자리에 도로랑 공원이 들어선겁니다.

    아타튀르크의 도시개발계획이 그렇게 신성한 것인가요? 일점일획도 바꿀 수 없게?
  • jeltz 2013/08/01 17:03 #

    애시당초 1943년 지어진 공원에서 어떻게 1923년 터키 공화국의 세속주의 이념이 탄생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시간을 달리는 공원이군요.
  • jeltz 2013/08/01 16:59 #

    "불교나 기독교권 국가들은 선진국이 끼어있기 때문에 종교 탓 못합니다. 자신들의 무능력입니다.
    근데 이슬람 국가중에 단 한곳도 선진국이 있나요? 여성 인권이나 민주주의가 크게 발달해 있나요?
    그게 아니니 문제죠."

    이 말씀을 듣고 문득 생각이 들었는데 그렇다면 샘물교회나 한국 교회의 중동 선교는 그 어떤 UN이나 UN인간개발기구의 정책보다 탁월한 중동/이슬람권 개발정책의 일환이었군요! 문제는 이슬람교니 종교를 바꾸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겠습니까. 샘물교회 선교단들을 다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 곰돌군 2013/08/01 17:02 #

    하나의 사회가 기존의 헤게모니를 깨고 다른 차원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그만한 댓가가

    필요한 법인지라 지금의 혼란이 과도기 라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민주주의가 정말로

    유일한 대안으로서 고려되는 것인지에 대해선 서구의 분석가들이 지나치게 희망적으로

    바라보는게 아닐까 생각됩니다.
  • 킹오파 2013/08/01 17:25 #

    글쎄요... 이슬람교 보다는 나라들의 문제점이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설득력이 없다고 봅니다.

    "당연히 제일 먼저 주목해야 할 점은 이슬람-아랍 문화권의 여성차별입니다. 어떤 분은 여성차별이 "이슬람교 문제가 아니라 아랍 문화권 문제"라고 강변하는데, 종교가 문화의 골격을 이루고 있는 사회에서 그 두 가지를 분리하기란 쉽지 않고, 다른 이슬람교 지역도 서구화가 된 일부 -- 같은 지역이라도 교육 및 소득 수준의 차이가 심함 ㄳ -- 를 제외하면 그런 여성차별은 비슷합니다. (트윈드릴)"

    라고 하셨는데 트윈트릴님의 생각에 저 역시 동의 합니다.
    한두 국가도 아니고 이슬람권 국가 57개국이 하나 같이 똑같다... 이건 무엇을 말할까요?
  • jeltz 2013/08/01 17:28 #

    "하나같이 똑같다" 라.

    물론 중동/이슬람권 전체적으로 여성 문제가 다른 세계 지역에 비해 심각한 것은 사실입니다.

    당장 인용하신 트윈드릴님 글에도 있는데요? [같은 지역이라도 교육 및 소득 수준의 차이가 심함]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집트는 다 똑같은 순니파 무슬림 국가인데 한 쪽에서는 여성이 취업도 못하고 혼자서는 밖에도 나가지 못하지만 이집트는 장관과 국회의원을 배출하죠.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머리를 가리는 것뿐만이 아니라 얼굴 심지어 눈까지 가리지만 이집트에서는 최고 종교기관의 수장이 "얼굴을 가리는 것은 비이슬람적인 관습이다" 라고 하지요.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집트는 다른 종교를 믿습니까? 뚜렷이 차이가 보이는데요?
  • jeltz 2013/08/01 17:30 #

    중동/이슬람권이 전반적으로 여성 인권이 취약한 문제에 대해서는 확실히 보수적 이슬람교의 영향이 강하고 이 부분에 대해서는 트윈드릴님이나 킹오파님의 지적이 일리가 있습니다. 물론 저는 두 분보다 이 문제에 미치는 종교의 영향력의 정도에 대해서는 그만큼 크지 않다라고 보는거구요.

    근데 아까 전까지는 이슬람과 민주주의, 정치발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계셨지 않습니까? "세속주의의 발상지 게지 공원을 밀려는 이슬람주의자"들 이야기도 하셨구요.
  • 킹오파 2013/08/01 17:32 #

    이집트는 여성 인권 실태가 가장 열악한 나라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지난 2월 발표된 유엔의 '이집트 성범죄를 근절하기 위한 방법 연구'에 따르면 이집트 전체 여성들 가운데 무려 99.3%가 성추행, 성폭행 등 성범죄를 겪어 본 것으로 나타났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8&aid=0003078040

    그냥 이슬람 국가들은 하나 같이 이럽니다. 어쩔수가 없어요.
  • jeltz 2013/08/01 17:39 #

    인도 역시 성차별, 강간, 신부값, 테러 문제가 심각한 나라입니다 - 물론 이집트보다 더한지 덜한지는 모르겠군요.

    그걸 가지고 그냥 힌두교 국가들은 하나 같이 이럽니다. 어쩔수가 없어요. 라고 하면 좀 곤란하겠죠.

    .....그나저나 인도 말고 힌두교 국가가 뭐가 있었죠? 이건 좀 가물가물하네..
  • jeltz 2013/08/01 17:44 #

    http://www.trust.org/item/20110615000000-hurik/?source=spotlight

    세계에서 여성이 살기 가장 끔찍한 나라 다섯 곳 : 아프가니스탄, 콩고, 파키스탄, 인도, 소말리아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소말리아 이 세 나라야 그래 이슬람이 원래 글러먹은 종교이니 그렇다 칩시다. 그럼 콩고나 인도는 대체 왜 그런겁니까?

    명확히 하기 위해 저는 "이슬람이 여권에 우호적이다" 란 주장을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여성 인권 문제의 이유는 "이슬람 국가는 원래 이렇게 생겨먹었다" 라고 할 수 없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지요.
  • 킹오파 2013/08/01 17:58 #

    인도 얘기를 하셨는데....

    힌두교도 이슬람 위세에 가려서 그렇지. 악명높습니다만....
    저는 힌두교도 그다지 좋지 않게 평가해요.
    근데 인도는 종교의 자유가 있기 때문에 힌두교 대신 다른 종교를 믿습니다.
    불가촉 천민은 불교, 기독교등 타교들로 돌리고 있죠.

    근데 이슬람은 타종교로의 개종을 과연 얼마나 허용할지 의문이군요...
    내 생각에 개종을 허용하면 힌두교처럼 신도수는 점차 이탈할거라 봅니다.
    힌두교보다 더하면 더하지 덜하지는 않겠죠.

    그렇기 때문에 종교의 자유를 필사적으로 억압하고 개종자들을 필사적으로 죽이려 드는 걸로 보입니다.
    안 그럼 힌두교 꼴이 날게 뻔하니..
  • jeltz 2013/08/01 18:01 #

    아아, 이슬람교에 이어 힌두교도 빌어먹을 종교로군요.

    세상 만사가 참 편해지는군요. 왜 중동 지역에서 여성 인권이 열악할까? 이슬람 때문에. 그럼 인도는 왜 열악할까? 아 그건 힌두교 때문에. 콩고나 에티오피아에서는 왜 여성 할례 문제가 계속되는 걸까요? 에티오피아 정교도 뭔가 문제가 있는것 같습니다.
  • 킹오파 2013/08/01 18:09 #

    제가 말했잖아요. 사람들이 불교 기독교에 대해 뭐라 그러지 않는건 선진국, 후진국들이 있으니 종교의 탓을 할수가 없다고요. 차라리 해당 국가의 무능함을 탓하면 탓했지.

    근데 이슬람은 모든 국가가 이러니 당연히 이슬람의 영향력이 크다고 생각할수 밖에요.
    57개국 모두가 무능하다는 것보다는 이슬람의 영향력이 크다고 봅니다.
  • jeltz 2013/08/01 18:33 #

    뭐, 나름 이슬람 국가들 사이에서도, 무슬림들 차이에서도 차이가 지대하다는 점을 보여주려고 그렇게 애를 썼고 이코노미스트의 기자들도 그렇게 애를 썼는데 "다 똑같다" 라고 생각하고 싶으시다면 전 더 할 말은 없습니다.

    아무튼간에 인간 세계와 사회의 모든 법칙 위에 군림하는, 마치 묵시록의 네 기사와 같은 무시무시한 이슬람 결정론에 대한 고견은 잘 들었습니다.
  • 킹오파 2013/08/01 17:30 #

    에르도안 총리는 세속주의의 상징인 탁심 광장 내 케말 파샤 강당을 부수고 그 자리에 이슬람 사원을 세우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20&aid=0002438974

    동아일보 기사 중 일부입니다.

    단순한 쇼핑몰 오스만 건축물... 님이 생각하는 거랑 다릅니다. 참고하세요.
  • jeltz 2013/08/01 17:37 #

    생각하는 거와 진짜 다를까요?

    [Protesters are angry about the removal of green space. They also claim that access to the square will become increasingly controlled, giving pedestrians only two entry points.

    The redevelopment plans include the construction of a shopping centre, which Prime Minister Recep Tayyip Erdogan insists will not be "a traditional mall" but will include cultural centres, an opera house and a mosque.

    An Ottoman-era military barracks will be rebuilt near the site, and the historic Ataturk Cultural Centre will be demolished.

    But critics say the decision to go ahead with the redevelopment was made too fast and without proper public and media debate.]

    시위대가 반대하는게 "모스크"를 짓는다고 해서 반대하는건가요 아니면 재개발 계획이 대중의 합의 없이 날림으로 처리되어서 반대하는 건가요?

    http://www.bbc.co.uk/news/world-europe-22753752
  • 킹오파 2013/08/01 17:52 #

    왜 시위대들이 총리를 안 좋게 평가하는 가...

    http://magazine.joins.com/newsweek/article_view.asp?aid=298029&pageno=1

    이게 더 심도있겠군요.
  • 강철의대원수 2013/08/01 17:59 #

    킹오파님이이슬람실어하시는건알겠는대요 이슬람이 정교불리와 거리가먼 종교라는건 사회가 중세에 가까운걸 간과하신거같네요

    우리나라에서 종교집단들이 정치에 개입하는걸 사회가 받아들이는게 다르다고보면 되지안을까 싶은대요
  • jeltz 2013/08/01 18:03 #

    에.....전 위엣분 말씀이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 강철의대원수 2013/08/01 17:53 #

    우리나라와 비교하시는게 좀그런게요 우리는 저후에 독제를 30년간 경험했으니까요;;


    세속독제정권이 야권을 모두 때려잡앗는대 살아남은게 종교로뭉친 이슬람주의라저모양;;
  • 킹오파 2013/08/01 18:10 #

    그러고 보니 세속 독재 정권이 다 때려잡았는데 살아남은 건 죄다 이슬람 주의...;;;
    무섭네요...;;;
  • jeltz 2013/08/01 18:14 #

    독재정권은 세속주의 야권은 때려잡기만 했지만, 이슬람주의는 때려잡은 동시에 이용했거든요.

    사다트의 예를 봐도 드러나죠.
  • jeltz 2013/08/01 18:23 #

    뭐.... 사실 팩트를 해석하는 저와 킹오파님의 시각이 거의 극단적으로 다른 관계로 일단 제 입장을 여기 정리해놓고자 합니다. 이거 쭉 가다간 그냥 철길마냥 평행선이네요 어차피.

    먼저 킹오파님은 저개발지역 - 특히 중동 이슬람 지역 -의 거의 모든 문제(민주주의, 여권, 경제개발, 소수자 인권)가 다 이슬람교의 배타성과 폐쇄성에서 기인한다고 보시는 것 같은데 저는 이 점에 대해 이슬람교는 모두가 합의하는 유일한 해석과 체계가 있는 종교가 아니라고 답을 드리고 싶습니다.

    크게 순니파-쉬아파 나뉘고 그 종파 내에서도 정말 다양한 사고관을 가진 "무슬림"들이 있죠. 같은 쉬아 이슬람 내에서도 하타미나 카루비와 같은 개혁주의자들이 있으며 성직자의 정치참여와 이슬람 공화국 이념에 반대한 샤리아티마다리나 몬타제리와 같은 성직자들이 있습니다. 그 대척점에 하메네이 같은 인물들이 있구요. 이 사람들 모두 이슬람을 믿으며 스스로를 무슬림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이들이 해석하는 이슬람과 그 모습은 판이하죠.

    순니파에서도 그렇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아직도 사람의 목을 자르고 십자가에 매달지만 튀니지는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헌법을 만들기 위해 1년째 질질 끌고 있고 터키는 그래도 나름 민주주의 구색은 갖추고 돌아가고 있지요. 한쪽에서는 여자가 얼굴 내놓는것도 외출하는 것도 금지이지만 다른 쪽에서는 여자들의 창업율이 세계 어느 지역보다 높습니다. 다 똑같은 무슬림 국가고 순니 이슬람 사회이지요.

    이슬람이 정교분리를 원칙으로 삼고 코란에서 그 근거를 찾는다구요? 저 위의 차이 모두 다 코란을 경전으로 삼는 무슬림들 내의 차이입니다. 기독교도들이 그렇듯이 무슬림 사회에서도 인간의 고유한 특성인 "이성"을 이용해 자신들의 경전과 전통을 재해석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고 그렇게 사회가 변화해가고 있습니다. 단순히 "이슬람은 정교일치이다"라고 해석하기는 조금 어렵습니다. 심지어 손목 자르거나 여자에게 유산 더 적게 주는것보다 정교일치 문제는 더더욱 해석에 큰 관계가 있어요. 왜냐하면 코란에는 이에 대한 언급이 "없기 때문이죠"

    따라서 저는 킹오파님이 종교의 인간에 대한 영향력을 너무 지나치게 강조하신 것이 아닌지 생각이 듭니다. 인간은 눈 막히고 귀 막힌 존재가 아닌 이상 항상 변화를 감지하고 이 변화에 발을 맞추려 하는 동물이라고 저는 보거든요. 뭐 킹오파님이 정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그런 의견을 가지고 계신 것은 자유입니다만, 저는 그런 종교결정론적인 의견에는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 킹오파 2013/08/01 20:22 #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이렇게 생각하시면 되지 않을까요?
    마호메트가 정교일치였는데 우리도 그렇게 하자. 라고 이슬람 주의자가 주장한다면요?
    마호메트 자체가 종교 지도자 + 정치 지도자였는데요.

    그들이 가장 존경하는 지도자가 정교일치를 했던 사람이니 이슬람 주의자나 보수적인 입장에서는 당연히 정교 일치 신정 체제가 기독교나 불교도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끌릴 수 밖에 없을겁니다.
  • jeltz 2013/08/01 20:45 #

    아...
    이집트에서 아랍권 최대의 이슬람주의 조직인 무슬림형제단이 집권 1년만에 전국민적 시위 맞고 정권 무너진 것은 못 보셨나요.

    무슬림이란 사람들 생각하시는 것만큼 그렇게 단순한 사람들 아닙니다.
  • 취준생333 2013/08/01 21:39 #

    이슬람 혐오주의자가 날 뛰네요.
  • 킹오파 2013/08/02 03:16 #

    댁은 21세기에 이슬람 협력 기구에서(이슬람 국가들 연합 모임) 신성모독 금지 국제법 추진한건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음. 그것도 2012년 9월에...

    참고로 OIC는 내가 앞에 말했던 이슬람 57개국의 연합체들이임.. 유엔 다음으로 가입 규모가 크죠.

    하여간 말이나 되나. 자신들의 가치관은 타국가에게도 따르라고 하는 건데...
    누가 봐도 혐오할 짓을 내가 아니라 이슬람 쪽들이 하지만? 댁은 외눈박인가?

    종교가 명예훼손을 당했다고 생각하면 해당 국가의 법률에 호소하면 될일입니다.
    표현의 자유를 국제법으로 무조건 틀어막자는건 무슨 오만인가.

    욕 쳐 먹는 기독교도 이리 오만하지는 않아요. 정신 좀 차리쇼.
    외눈박이인 당신은 모르겠지만 무개념은 이슬람이지 내가 아닌데... 이슬람 교도들이나 이슬람이 좋지.
    이런식으로 행동하면 모든 비이슬람은 이슬람을 혐오할수 밖에 없음.

    지네들 나라에서 해도 표현의 자유가 없는 판국에 그걸 떡하니 "국제법"으로 추진은 뭔 개념인겨?
    서방이 그걸 반대해서 다행이었지. 이게 얼마나 심각한지 예를 들자면...

    "나는 예수를 신의 아들은 아니라고 보지만 인류 역사에 남을 훌륭한 선생님인건 틀림없다.." (실제 내 생각)

    라고 발언해도 기독교 신자입장에서는 신성모독이기에 졸지에 나는 "너 고소!!" 에 걸릴수도 있음.

    21세기에도 전세계를 상대로 신성모독금지를 국제법으로 하자고 할정도로 오만한게 이슬람인데 민주화? 마인드가 그런데 울 나라처럼 30년? 100년도 진짜 최소한 중에 최소한으로 본거요. 어이가 없어서..

    케말 파샤급 같은 인물이 현재에 갑툭튀 한다면 얘기가 달라지니 내가 잘못 예측했다고 얘기하지요.
  • jeltz 2013/08/02 10:12 #

    킹오파님의 단순한 세계관이 부러울 때가 있습니다. 저도 그런 세계관을 받아들이면 얼마나 편한지 알거든요.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하.... 공부하는 사람인지라 아무리 단순하고 간단하고 편리한 길이 있더라도 이상한 방향으로 난 길을 갈 수는 없는 노릇이죠. 어렵지만 조금이라도 사실에 가까운 길을 찾을 수밖에요.

    아무쪼록 킹오파님도 모든 것이 딱딱 원하는 대로 돌아가는 그 세계관 내에서 행복하게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행복한게 중요하지요.
  • 킹오파 2013/08/02 10:43 #

    단순하게 생각하는건 님이겠죠. 자신들만이 통용하는 개념을 자신들만 가지고 있는건 그렇다고 칩시다.

    그걸 전세계에 우리 마인드를 너네도 똑같이 유지해라... 하는 나라들이 민주화를 한다는건 울 나라보다 훨씬 더 시간이 걸릴거라는건 누가 봐도 자명한 일입니다. 난 님보다 이슬람 세계를 모릅니다. 당연히 님은 이슬람 세계를 공부하니 저보다 더 잘알겠죠.

    하지만 이슬람의 이런 행동을 보면 전혀 모르는 저나 제3자인 분들은 모두가 울 나라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든다는건 누구나 예측 가능합니다.

    전세계인을 상대로 표현의 자유를 박탈하자는 주장을 떡하니 하는게 현재의 이슬람인데 울 나라와 비슷하게 30년??? 과연 그럴지 지켜보면 나오겠죠.

    뭐 케말파샤급 정도 되는 걸출한 사람이 갑자기 등장해서 나라를 대변혁 시킨다면 우리보다 더 빠를수는 있겠죠. 두고 보면 될일이지만.. 미래는 그 누구도 모르는 일이니깐요.
  • jeltz 2013/08/02 12:26 #

    아-------멘!
  • 행인1 2013/08/01 23:21 #

    영향력이 큰 이집트가 넘어갔으니 이전처럼 아무일 없이 지낼수는 없겠지요. 아마 몇년간은 다시한번 '격동'의 시기를 거치지 않을까 합니다.
  • 망고망고 2013/08/01 23:39 #

    몇 년전부터 블로그 글들 꾸준히 애독하고 있습니다. 고생하시는것 같아서 코멘트 남기고 갑니다. jeltz님도 아시겠지만 킹오파 유명한 트롤이에요...
  • 설봉 2013/08/02 14:49 #

    생각의 차이가 극단적일 뿐 딱히 두 분이 서로를 인신비난할 이유는 없어 보입니다. 이슬람 세계를 보는 서로의 관점이 다름을 인정하고 넘어가시지요.

    글 언제나 감사히 보고 있습니다.
  • 글피 2013/08/02 21:41 #

    우리에게는 좀 낯설지만 결코 무시해버릴 수 없는 중동과 무슬림의 이야기를 전해주시는 수준 높은 글에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슬람의 특성을 생각하면 명실상부한 민주주의를 달성하려면 다른 지역보다 더 오래 참고 기다려야 할 것 같군요.

    다음 글이 기대됩니다.
  • 앨런비 2013/08/02 22:21 #

    이슬람의 본질적인 문제도 있음. 중세 기독교와 비교하면 통일된 집단이 존재한다고 보기 힘들다는 것. 특히 중세 카톨릭에 반발하여 종교개혁이 일어나고 이것이 연이어 사회를 바꾼 것을 생각하면 이슬람은 그러한 종교개혁의 과정이 진행되기 이전에 분열되었다는 문제가 존재. 그리고 결과는 일부라지만 널리 뻘짓이 일어나고 하지만 일부라는 문제 때문에 면피할려는 사람들도 많은 시츄.
  • jeltz 2013/08/03 10:18 #

    사실 제가 보기엔 그건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라 그냥 배경이 다른거죠.
  • 앨런비 2013/08/03 13:13 #

    뭐 여튼 그런 전차로 이슬람에게는 터키가 가장 나은 길일 수 밖레 없을듯. 튀니지가 새로운 모범이 될지는 두고 봐야 할 터이고. 이집트는 민족국가에 근접했다는 면에서 이번 위기를 넘기면 뭔가 기대할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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