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이슬람 공화국의 쉬아 민족주의와 소수 종교집단 이란

모든 국민은 어떤 민족이나 종족에 속하든 평등권을 누리며, 
피부색, 인종, 언어 및 이와 같은 기준으로 인해 차별받지 않는다.
이란 이슬람 공화국 헌법 3장 19항

 Anh Nga Longva(이 이름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도저히 감도 안잡히는군요....)는 중동의 민족주의(Nationalism)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중동의 민족주의, 특히 아랍과 이란식 민족주의는 보편적인 시민적 연대에 중점을 두는 프랑스식 계몽주의 모델이 아닌 특수한 문화적 연대에 중점을 두는 독일식 낭만주의 모델에 영향을 받았다." (Longva 2015, 13)

 이에 따라 Longva는 아랍 민족주의가 세속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종교(이슬람)보다는 아랍어와 같은 '아랍적인 문화/요소/특성'을 강조하는 이념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이슬람이 완전히 배제된 이념이라는 뜻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아랍 민족주의가 주장하는 '아랍 민족'에는 아랍어, 아랍 문화 외에도 이슬람의 요소를 빼놓을 수 없지요. 

 신정체제를 표방하는 이란 이슬람 공화국 체제 하에서도 '민족주의'가 배척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란 이슬람 공화국 체제에서는민족주의는 종족(ethnic)이 아닌, '쉬아 이슬람'에 기반을 둔 민족주의가 형성, 발전했습니다. Longva는 종교에 기반을 둔 아랍과 이란의 민족주의를 종교적 민족주의(religious nationalism)라고 부릅니다(ibid, 13). 

 공통의 조상, 혈연 및 문화적 동질감 등에 기반한 팔레비 왕조 시절의 민족주의(Longva는 이를 세속적 민족주의secular nationalism이라고 구분합니다.) 아래에서 다수 집단과 다른 종교를 가진 소수 종교 공동체는 비교적 안정적인 지위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기독교도든 바하이교도든 조로아스터교도든 종교에 상관없이 페르시아인 및 이란 국가의 국민이라는 정체성이 가장 우위에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이슬람 혁명 이후 '충실한 이란 국민'이라는 개념이 쉬아 무슬림 정체성을 기반으로 자리잡음에 따라 쉬아 무슬림이 아닌 이란인(같은 무슬림이지만 종파가 다른 순니파를 포함하여)의 입지는 흔들리게 되었습니다. 쉬아 무슬림이라는 것은(그리고 특히 남성) 이란 내에서 완전한 법적 권리를 누릴 수 있음을 의미하지만, 쉬아 무슬림이 아니라는 것은 언제든 이란인으로서의 정체성과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 의심받고 배척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지요. 이처럼 특정 종교에 근거한 종교적 민족주의는 모든 국민의 평등이 아닌, 특정 종교 집단이 다른 집단에 비해 사회적, 정치적, 법적으로 우위에 놓이는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이스라엘 하이파에 있는 바하울라의 아버지이자 바하이교의 전신 종교인 바비교의 창시자, 바브의 무덤>

 (오스만 제국은이란에서 도망나와 이스탄불에 머물던 바하이교의 창시자 바하울라를 골칫거리 제거 겸 당시에는 변방이었던 
팔레스타인으로 추방해버립니다. 이에 따라 많은 초기 바하이교 지도자들은 팔레스타인, 오늘날의 이스라엘 영토에 머무르게 되고, 본부 및 지도자들의 무덤도 이스라엘 내에 위치하게 됩니다. 이는 오늘날 이란 정부에게 바하이교와 이스라엘의 '관계'에 대한 또다른 '근거'로 쓰입니다.)

 가장 단적인 예는 바하이 집단입니다. 공직에까지 진출할 수 있었던 팔레비 시기와는 달리, 현재 이란 체제 하에서 바하이 집단은 철저히 박해받고 배척되는 집단입니다. 이들은 법적으로 불합리하게 처벌받고 정치적 권리가 박탈당하는 정도를 넘어, 일상의 사회적 차원에서도 공권력이 아닌 쉬아파 일반인들에 의해 차별당하곤 하며 부정적인 이미지를 뒤집어 씁니다. 이처럼 종교적 민족주의가 만들어낸 쉬아 무슬림과 그렇지 않은 집단 사이의 우열관계는 사회의 개인 차원으로 확산되어 일상적 상호작용에까지 영향을 끼칩니다. 이들이 뒤집어 쓴 이미지는 '제국주의자의 하수인, 시오니즘의 주구, 미국의 개, 왕정복고주의자, 배교자, 불결한 이단들, 성적으로 방탕하고 문란하며 타락한 자' 등등 쉬아 이슬람 정체성과 민족주의 정체성의 결합에서 만들어낸 모든 부정적인 이미지를 아우르고 있습니다 (Warburg 2015, 208-213). 

 혁명 직후인 1979년 7월 시르잔(Sirjan)의 지방 정부가 발행한 문서에서 바하이 집단은 특정 종교 및 종파 집단의 신도가 아닌, "제국주의적 러시아 차르의 조력자들이 만들어낸 하인, 기만적이고 공격적인 영국인들의 도움을 받은 존재"라고 묘사되고 있으며 미국과 이스라엘이 퍼뜨린 "불결한 나무(바하이교)의 추악하고 불쾌한 열매(바하이 신도)"이자 "제국주의의 제5열, 다신론자이자 20세기의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반동주의자들의 견해를 상징하는 집단"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ibid, 208). 1980년 바하이교도에 대한 판결문에서 그는 이스라엘과 국제 시온주의 조직의 지원을 받아 이스라엘을 위해 이란에 대한 음모를 꾸민 혐의로 사형을 받았습니다(ibid, 209). 

 또한 바하이 교도는 '종교적으로 불결한(najes)' 집단으로 간주됩니다. Warburg는 이란 사회 내에서 바하이 집단이 성적으로 문란하고 매춘과 집단 성교를 즐기며 근친상간이 만연한 집단이라는 소문이 널리 퍼져있다고 지적합니다. 한 예로 그는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한 바하이 학생이 부상병들을 위해 헌혈을 하러 갔을때, 그녀는 "더러운 바하이 교도의 피를 무슬림에게 줄 수 없다"는 이유로 헌혈을 거부당했다는 사례를 인용합니다. Warburg는 이러한 '청결한 무슬림 - 불결한 비무슬림(바하이)'의 구분이 쉬아 무슬림 집단의 우위 유지 및 집단 자존감 고양의 목적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합니다(ibid, 213). 이처럼 사회 및 개인의 차원에까지 이런 이분법적 담론이 널리 확산되고 유지될 수 있는 배경에는 비무슬림에 대한 쉬아 무슬림의 우위를 뒷받침하는 민족주의 담론과 이를 후원, 지지, 확산하는 국가 권력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하이 집단이 지닌 '종교적으로 불결한 집단'이자 '이란의 주권을 위협하는 제국주의의 첨병'이라는 겉으로는 서로 관련 없어보이는 이미지는 종교와 민족주의가 결합된 이란 민족주의의 하나의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란 야즈드의 조로아스터교 대사원>

 조로아스터 공동체 역시 크게 보면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비록 바하이교와 달리 조로아스터교는 공식적으로 이란에서 인정받는 종교 공동체이지만, 비무슬림이라는 제약에 여전히 매여있는 상황입니다. 특히 이슬람 이전 페르시아 제국에 기반하여 통치당성을 강조하고자 했던 팔레비 왕조 시절 조로아스터교는 이슬람 이전 이란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종교로 격상되었고, 달 이름이 조로아스터교의 신격들이나 명칭으로 바뀌는 등 "소수 종교의 요소가 주류 공적 문화의 한 부분이 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Stausberg 2015, 183). 

 그러나 이슬람 혁명 이후, 조로아스터교의 상징이 차지하던 이런 높은 지위는 이를 이란의 '탈이슬람화'로 간주하던 성직자 집단에 의해 배격됩니다(ibid, 183). 물론 바하이교와 달리 이란의 신년명절인 노우루즈(Nowrouz), 국명인 이란(Iran) 및 달 이름 등의 이슬람 이전 페르시아적 요소는 계속 남아 있었으며, 조로아스터교도는 공인된 종교로 법적으로는 의회에 의석 쿼터까지 지니고 있었지만 종교에 따른 사회적 차원의 차별은 더욱 심해졌습니다. 바하이 교도와 마찬가지로 이들도 종교적으로 불결한 집단(najes), 불신자(kafr) 등의 비난을 듣거나 공직 및 군대 취업에서 차별받는 등의 수난을 겪고 있습니다. 또한 조로아스터교도를 포함, 비무슬림들은 상속 시 가족 구성원 중 하나라도 무슬림으로 개종한 사람이 있다면 그 무슬림에게만 상속권이 인정되는 등의 개인지위법에서도 차별을 받고 있습니다(ibid, 189-190). 종교, 특히 쉬아 무슬림에 근거한 민족주의에 근거한 이란 체제에서 조로아스터교와 같은 비무슬림들의 평등한 시민으로서의 지위는 점점 흔들리고 있습니다. 
<테헤란의 UN 본부 앞에서 이란의 핵보유 지지 시위를 하는 이란 유태인들>
출처: http://www.timesofisrael.com/iranian-jews-rally-in-support-of-nuclear-program/ 

 이란의 유태인 공동체는 미묘한 위치에 있습니다. 툭하면 이스라엘을 지도에서 지워버려야 한다, 홀로코스트는 구라다하는 나라에 살고 있는 유태인들은, 자신들의 생존을 보장받기 위해서 이란 체제에 대한 충성과 이스라엘/시온주의와의 선긋기를 강조합니다. 이란 유태인 대표들은 홀로코스트는 구라고, 유태인들과 시오니즘은 악이라고 공공연히 떠들어대는 아흐마디네자드와 만나 악수하고 친근감을 과시하면서 자신들이 이스라엘과 다름을 강조하고, 더 나아가서 반이스라엘 시위를 테헤란에서 벌이기도 합니다(Sanasarian 2015, p 319-320). 이런 행보는 다른 종교=비국민으로 낙인찍히면 탄압 정도가 아니라 아니라 또다른 포그롬을 겪을 위협에 상시 노출되어 있는 유태인들의 하나의 생존전략이기도 합니다. 

 무슬림과 비무슬림에 대한 차별은 처벌 수준에서도 존재합니다. 무슬림 여성과 불법적 관계를 맺은 비무슬림 남성은 사형이지만, 비무슬림 여성과 불법적 관계를 맺은 무슬림 남성은 채찍질 100대에 그칩니다. 심지어 동성애 처벌에서도 종교에 따른 차이가 존재하는데, 성적 관계가 없는 남성 동성애 혐의는 무슬림일 경우 모두 채찍질 100대이지만, 만약 동성애 관계가 비무슬림 남성-무슬림 남성이며 비무슬림이 '우위' 관계에 있을시, 처벌은 사형입니다(ibid, 307). Sanasarian는 이란 체제의 특성을 "1. 무슬림의 삶의 가치는 비무슬림의 삶의 가치보다 위에 있음. 2. 비무슬림에 대한 더욱 엄격한 처벌. 3. 심지어 동성애 관계에서도 비무슬림의 우위 허락하지 않음." 이라고 요약합니다(ibid, 307). 
<2014년 9월 이슬람 혁명 34주년 기념 군사행렬에 참가한 아랍 바시지 민병대원들>
출처: http://www.dailymail.co.uk/news/article-2765470/Iran-military-parade-acts-coded-message-ISIS-terrorists.html 

<이란 발루치스탄의 순니 무장조직인 '정의의 군대(Jaysh al-Adl)'에 납치된 이란 국경수비대원들>
출처: http://www.al-monitor.com/pulse/originals/2014/03/iranian-border-guard-killed.html

 그러나 같은 무슬림이라고 상황이 크게 나은 것도 또 아닙니다. 순니파 역시 복잡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같은 '무슬림'이지만 이란의 공식 종교인 '쉬아 이슬람'과는 다르며, 이란의 순니파 대부분은 주류 이란인과 민족적으로도 다른 아랍인(걸프 지역의 후제스탄Khuzestan 중심 거주) 또는 발루치인(파키스탄 접경지역의 발루치스탄Baluchistan 중심 거주)입니다. 이러한 민족적-종파적 차이로 인해 같은 무슬림에도 순니파는 결코 쉬아파와 같은 주류에 편입되거나 동등한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장관과 같은 행정직, 군부 및 헌법수호위원회 등 주요 핵심 요직에서 순니파는 찾아보기 어려우며 심지어 순니파 다수 지방정부에서도 순니파는 배제되어 있습니다. 다른 비무슬림 공동체와 마찬가지로 사회적으로도 순니파의 지위는 결코 안전하지 않습니다. 1993년 마슈하드, 자헤던 등에서는 순니파 모스크에 대한 습격이 발생하기도 했고, 순니파 전통에 따른 이슬람 절기 기념(순니파와 쉬아파에서는 차이가 있는 이슬람 명절이 있습니다. 가령 예언자 무함마드 탄신일도 서로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및 순니파 의례에 따른 예배 등도 제한을 받고 있습니다(Ashukvari, 2014/2/12). 무슬림임에도 주류 담론에서 배제되는 순니파의 처지는 '이슬람 공동체(Ummah)의 단합을 가르치고 강조하는 이란의 교과과정에서도 드러나는데, 이란 공식 담론에서 주장하는 '이슬람 공동체의 단합'은 쉬아파의 우위를 기반으로 하는 단합입니다(Sanasarian, p 321). 
 
 이처럼 이란에서 종교와 민족주의는 긴밀한 관련을 맺고 있으며, '불신자/이교도'와 '신실한 쉬아 무슬림'라는 이분법과 '이란의 적'과 '충실한 이란 국민'이라는 이분법은 상호 호환 관계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소수 종교 집단에 대해 종교가 아닌 '제국주의와 결탁한 세력'이라는 비난이 가능한 것이고, 역으로 '국가의 적'에게 '조로아스터교도/바하이교도'라는 비난이 가능해집니다. 2009년 녹색혁명 당시, 보수파 정권은 시위대를 "위선자들, 왕당파, 종교적 윤리적 테러리스트들, 바하이교도들, 동성애자들, 양성평등주의자들, 민족주의자들, 마르크스주의자"라고 비난했으며 국영 신문사, 방송사에서는 당시 시위의 중심에 있던 개혁파 후보들인 미르호세인 무사비(Mir-hossein Musavi)와 메흐디 카루비(Mehdi Karoubi)의 측근과 지지자들이 바하이 교도라고 비난해댔습니다(ibid, 322). 

 호메이니가 지명한 혁명위원회 위원이자 이란-이라크 전쟁시 총리를 지낸 무사비, 한때 강경파 성직자로 알려진 카루비는 하루아침에 바하이교와 연루된 신세가 되었습니다. Sanasarian은 이런 역설적인 상황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와 '타자' 사이의 끊임없는 분리에 기반을 두고 세워진 체제는 항상 새로운 '우리'와 '타자' 분리를 만들어낸다."(ibid, 322). 

 그들이 조로아스터교도, 바하이교도, 유태인, 순니파, 기독교도를 잡아갈 때 "나는 쉬아 무슬림이니까 괜찮아"라고 하던 사람들도, 본질적으로 위계질서를 세우고 끝없이 타자를 분리하고 배척하는 체제 내에 살고 있는 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불신자이자 제국주의의 하수인, 이란의 적'으로 몰릴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오늘날 이란의 쉬아파 민족주의가 가져온 결과입니다. 

 참고문헌

 Lonva, Anh Nga (2015), "Introduction: Domination, Self-Empowerment, Accommodation" in Anh Nga Longva and Anne Sofie Ronald(eds) Religious Minorities in the Middle East: Domination, Self-Empowerment, Accommodation. Leiden: Brill, pp. 1-23.
 Stausberg, Michael (2015), "From Power to Powerlessness: Zoroastrianism in Iranian History" in Anh Nga Longva and Anne Sofie Ronald(eds) Religious Minorities in the Middle East: Domination, Self-Empowerment, Accommodation. Leiden: Brill, pp. 171-193.
 Warburg, Margit (2015), "Baha'is of Iran: Power, Prejudices and Prosecutions" in Anh Nga Longva and Anne Sofie Ronald(eds) Religious Minorities in the Middle East: Domination, Self-Empowerment, Accommodation. Leiden: Brill, pp. 195-218.
 Sanasarian, Eliz (2015), "Nationalism and Religion in Contemporary Iran" in Anh Nga Longva and Anne Sofie Ronald(eds) Religious Minorities in the Middle East: Domination, Self-Empowerment, Accommodation. Leiden: Brill, pp. 309-324.
 2014.2.12 ،BBC Persian ،اشكورى، حسن يوسفى. جایگاه اهل سنت در جمهوری اسلامی
http://www.bbc.com/persian/iran/2014/02/140201_l44_35th_iran_revolution_sunni 



덧글

  • K I T V S 2015/12/30 21:12 #

    수 십년은 치고박고 많이 다치고 눈물 흘려야 문제를 깨닫고 해결의 실마리가 보일 수 있겠구려;;;
  • 푸른별출장자 2015/12/30 21:28 #

    단순히 시아-수니, 또는 이란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혁명을 거쳤던 나라에서 보였던 그 순수함에 대한 강박관념, 순혈주의가 보이는군요.

    그 이면에는 혁명을 거치면서 파괴된 그릇속에 조금 남아 있는 파이 조각을 나눌 사람을 줄이자는 사악한 욕망도 들어 있고요.
  • 채널 2nd™ 2015/12/31 00:15 #

    이란도 '참' 불쌍한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그 놈의 "혁명"이 뭐길래 ..................... ;;;

    뭐, 이제는 미합중국과 관계 개선을 '잘' 해서 ... 과거의 그 잘 나가던 '페르시아'를 재건해 볼 꿈이 젖어 있겠지만.
  • 나디르Khan★ 2015/12/31 23:41 #

    좋은 글 감사합니다.
  • 설봉 2016/01/04 11:42 #

    좋은 글 감사히 읽었습니다. 일전에 제가 부탁드렸더 것이 맞지요?

    [ 공통의 조상, 혈연 및 문화적 동질감 등에 기반한 팔레비 왕조 시절의 민족주의(Longva는 이를 세속적 민족주의secular nationalism이라고 구분합니다.) 아래에서 다수 집단과 다른 종교를 가진 소수 종교 공동체는 비교적 안정적인 지위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기독교도든 바하이교도든 조로아스터교도든 종교에 상관없이 페르시아인 및 이란 국가의 국민이라는 정체성이 가장 우위에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이슬람 혁명 이후 '충실한 이란 국민'이라는 개념이 쉬아 무슬림 정체성을 기반으로 자리잡음에 따라 쉬아 무슬림이 아닌 이란인(같은 무슬림이지만 종파가 다른 순니파를 포함하여)의 입지는 흔들리게 되었습니다. 쉬아 무슬림이라는 것은(그리고 특히 남성) 이란 내에서 완전한 법적 권리를 누릴 수 있음을 의미하지만, 쉬아 무슬림이 아니라는 것은 언제든 이란인으로서의 정체성과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 의심받고 배척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지요. 이처럼 특정 종교에 근거한 종교적 민족주의는 모든 국민의 평등이 아닌, 특정 종교 집단이 다른 집단에 비해 사회적, 정치적, 법적으로 우위에 놓이는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다만 이 부분에 대해 질문이 있는데 종교가 아니라 민족(ethnic group)별로 이란을 분류하면 현대 페르시아어(Persian)를 쓰는 인구의 비중이 5~60%에 불과하던데 아제르바이잔인이나 쿠르드도 전부 "페르시아인"에 포함되는 것인지요?
  • jeltz 2016/01/04 13:21 #

    물론 그 친구들은 종족/민족(ethnic) 기준으로는 이란인(Iranian)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다만 팔레비 왕조 및 5~60년대의 중동의 다른 세속 '민족주의' 정권들의 경우, 종족 정체성에 기반을 둔 국가 정체성 - "모든 민족을 아우르는 이란 제국"이라든지, "모두가 다 똑같은 시리아인" "내가 터키인이라는 것은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등등 - 을 주로 밀었습니다. 중동의 세속민족주의는 내적 차이 - 종족이든 종파든 뭐든 - 을 인정하고 다양성을 통합해 포괄적인 국가 정체성을 만드는 것이 아닌, 내적 차이는 그냥 없는 취급하고 다양성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를 부정하는 식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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